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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서대문/서대문 역사이야기 45

서대문의 역사 - 70년대 교통발달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서대문의 역사 - 70년대 교통발달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아요. 사진으로 서대문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서대문의 역사 - 70년대 도로와 건축물 바로 가기 ) 참~ 사진 한 장 한 장이 우리의 역사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요즘에는 디지털 사진기가 잘 발달되어 있고, 또 기능도 너무 좋아서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지만 예전 6~70년대 사진은 그 가치 만으로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참 귀한 자료인 것 같아요^^ 오늘은 지난번 서대문 역사 사진전에 이어 에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우리가 사는 동네의 변천사를 사진으로 만나보는 것, 내가 매일 지나는 길이 어떻게 변했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죠? 바로 시작할게요~ [1..

여인들의 죄를 묻지 않았다던 홍제천 이야기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에서 시작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길 홍제천은 세검정의 맑은 빗물이 홍제원 부근에서는 하천에 모래가 많이 쌓여 늘 모래밑으로 물이 흘러 사천(沙川)이라 하고 또는 홍제원 옆에 있는 개천이라고 하여 홍제천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러한 홍제천에 얽힌 가슴아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략으로 항복하게 되자 조선의 많은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 가게되었습니다. 그 중 심양으로 끌려갔던 사대부집 여자들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그들을 맞이하는 조정에서는 고민에 빠지자 이에 인조가 영을 내려 " 홍제원의 냇물에 목욕을 하고 서울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그런 후에 그녀들의 정조 문제를 거론하는 자가 있으면 엄단하겠노라고 하였다하니 얼마나 서글픔과 선조들..

천연동 천연정(반송정) 이야기

천연동 동명여자고등학교에 있는 자리에 조선 영조때 세운 「천연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나무 가지가 우산같이 옆으로 퍼져있는 소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하여 '반송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반송정」이라고도 하였다. 반송정은 무악재가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데 빼놓지 않았던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하였으나그 후 태종 7년(1407년)에 모화관이 건립되면서 연회자의 장소가 이곳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 17년, 일본 초대공사 화방의질(花房義質)이 이곳을 일본공사관으로 사용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일본을 배척하는 군인과 백성들의 습격으로 정자가 불타버리고 일본인은 인천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갔다. 또한 모화관은 원래 넓은 공지로 군사의 훈련 및 무사들의 시험장소로 ..

충정로 동명 유래

총정로란 동명(洞名)은 조선말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이던 죽첨진일랑(竹添進一郞) 이름을 본따서 죽첨정(竹添町)이라 부르던 것을 1946년 10월 1일에 조선말의 순국열사 충정공 민영환(忠正公 閔泳煥)의 시호인 '충정'을 뽄따 지은 것입니다. 충정공은 군부대신, 영국 등 6개국 특명 전권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신식문명을 접하게 된 지식인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체결로 국권(國權)을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자 이 조약 폐기를 두 차례난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함에 1905년 11월 30일 새벽, 국민과 각국 외교관에게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短刀)로 자결 하였던 인물입니다. 이 정신은 이준열사(李儁烈士),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 등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지역을..

늦가을에 어울리는 데이트 장소 독립공원, 가을정취와 역사의 숨을 함께 느끼기

긴팔을 꺼내 입은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옷깃을 여미게 하는 11월의 늦가을이 찾아왔어요. 그래도 여전히 높고 푸른 하늘만큼은 아직 가을이란걸 실감케하는데요, 연인과 함께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면 다가오는 겨울에도 마음이 따뜻할 것만 같아요. 늦가을 연인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데이트장소를 추천해드릴게요 ^^ 늦가을 하면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낙엽이죠~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보고 마음이 행복해지는 기분이든다면, 떨어진 낙엽을 밟는 순간 전해져오는 그 쓸쓸함이 마치 제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갖게 하더라구요. 이상하게 예전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혼자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하죠. 그래서 혼자 밟는 낙엽은 쓸쓸하지만 연인과 소근소근 대화를 나누며 같은 발..

도심 속 정갈한 사찰, 백련사를 찾다

살을 에는 추위가 거침없이 몰아닥친 이번주 별 탈 없이 잘 지내고계신지요~? 오늘부터 날씨가 풀린다고는 하지만 눈도 펑펑 내리고, 겨울인지라 추위에 방심할 순 없네요. 주말 건강히 보내시길 바라면서 도심의 한가운데서 늘 정갈한 자태로 주민분들을 맞아주는 를 소개해드립니다 :) 서대문 백련사의 모든 것 서대문구 홍은동의 백련산에 위치한 백련사는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랍니다. 뒤로는 백련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시내를 내려다보고있는 백련사는 오르기 힘든 사찰과는 달리 편하게 찾을 수 있어 주민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 백련사에는 총 9개의 전각이 있는데요, 자세히 한번 둘러볼까요? 사찰이다보니 전각들도 모두 불교 사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설명이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으실거에요 ^^ 하지만 오랜..

합동의 누교(泪橋)

합동(蛤洞)은 썰물 때 마포에서 배들이 들어와 어패류 상점들이 많이 생기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특히, 그 앞쪽으로는 예전에는 서대문구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중구 의주로2가에 편입된 대왕빌딩과 서소문 공원부근(옛 수산시장 자리)에 서소문 형장이 있어 1805년 천주교도 대학살이 대량으로 처형을 당했던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서소문 공원 순교자 현양탑의 모습 사형 당하는 모습과 눈물어린 누교(泪橋)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천주교도를 잡아 사형을 시키기 위하여 소달구지에 태우고 오는데 두 팔은 펴 십자가 좌우 양끝에 묶고 머리카락은 풀어 기둥에 묶었으며 발은 이동이 가능한 목판위에 세워 압송했습니다. 서소문을 나오면 심한 비탈길이 시작되는데 소달구지가 성문을 나오자 비탈길로 접어들기에 가속이 붙고 심하게..

서대문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서대문구 역사 사진 전시회 마음이 괜스레 공허해져 추억에 잠기는 가을, 서대문구에서 역사 사진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신촌로터리, 독립문 등 평소 느끼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친 거리의 50년대에서부터 70년대 까지의 과거사진과 발전된 현재사진을 비교 전시하여, 과거의 아름다운 향수와 눈부시게 발전한 우리 고장을 다시 한 번 느끼고자 서대문구 역사사진 전시회를 열었답니다. 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겨있는 이야기 속으로 함께 되돌아 가셔서 이 땅위에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의 희노애락과 역사의 숨결을 어루만져 보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고있어요~ 현대백화점 신촌점 유플렉스에서 열린다고 하니 따로 시간을 낼 필요 없이 지나가시다가 잠깐 들러서 구경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현대백화점 신촌점 U-pl..

삼일절(3.1절) 역사이야기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태극기 게양법

몇 일만 지나면 봄의 계절, 3월이 되네요. 3월은 항상 입학, 입사 등으로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지는 특별한 달인데요.^^ 이런 3월의 시작과 함께하는 건 다름아닌 국경일 ‘3.1절’입니다. 삼일절은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독립열사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인데요. 우리 대한민국 역사에서 3.1운동이 가져다 주는 그 의미가 매우 뜻 깊었기에 1949년 국경일로 지정한 것이랍니다. 그저 ‘쉬는 날’이 아닌, 우리 민족의 숭고한 피와 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날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 시작합니다! 삼일절(3.1절) 이야기 일제치하 수모의 역사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렸습니다. 당시 제국주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