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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동 천연정(반송정) 이야기

서대문TONG 2011. 3. 24. 15:40


천연동 동명여자고등학교에 있는 자리에 조선 영조때 세운 「천연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나무 가지가 우산같이 옆으로 퍼져있는 소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하여 '반송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반송정」이라고도 하였다.

반송정은 무악재가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데 빼놓지 않았던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하였으나그 후 태종 7년(1407년)에 모화관이 건립되면서 연회자의 장소가 이곳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 17년, 일본 초대공사 화방의질(花房義質)이 이곳을 일본공사관으로 사용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일본을 배척하는 군인과 백성들의 습격으로 정자가 불타버리고 일본인은 인천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갔다.

또한 모화관은 원래 넓은 공지로 군사의 훈련 및 무사들의 시험장소로 사용하였던 곳이었으나 조선말 독립협회에서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던 곳이다.


 

천연정 정자 위에서 노래한 시


 

고종조(高宗朝)(1860~1907)의 시인인 황록비(黃綠比)는 천연정에 앉아 서지(현재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연못)에 되어있던 연꽃과 천연동 지역에서 나오는 차고 맑은 물을 마시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천연정 올라서

무더위를 피하는데

밤 늦게 연꽃 구경하다

정자 위에서 잔다네


한 평생 퍼진 큰 잎은

넓직 넓직 서 있고

끝없이 맑은 향기

줄기마다 엉기었네


못 속에 잠긴 저 달은

넓은 바다에도 통할 것이

종소리 멀리서 들리고

만호장안(萬戶長安)에 등불이 밝구나


호상(湖上)에서 놀던 범충(范蟲), 서시(西施)

지금은 어데 갔나,

먼 산에 새벽닭 우니

마시던 술이 어름같이 차구나


 


 



숨은 이야기 하나



천연동 13번지에는 저절로 생긴 연못이 있어 천연지(天然池)라 하였고, 또한 연못이 서울 서쪽에 있으므로 서지(西池) 혹은 서편 연못이라 불리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연못은 1720년대 제작도 도성도(都城圖)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조선시대에 그려진 지도에 나타나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남쪽에 있었던 남지(南池)와 함께 잘 알려진 연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연못은 둘레가 넓고 못이 깊었으며 연꽃이 무성하였으나 지금은 메워져서 금화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 서편 연못과 함께 중구 남대문로5가의 남대문 남쪽에는 남지(南池) 또는 남편 연못이라고 부르는 못이 있었고, 창경궁 동쪽 연동(蓮洞)에는 동지(東池)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그 당시 서지(西池)의 연꽃이 무성하면 서인이 득세하고 동쪽 연못의 연꽃이 무성하면 동인이 득세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