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정로란 동명(洞名)은 조선말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이던 죽첨진일랑(竹添進一郞) 이름을 본따서 죽첨정(竹添町)이라 부르던 것을 1946년 10월 1일에 조선말의 순국열사 충정공 민영환(忠正公 閔泳煥)의 시호인 '충정'을 뽄따 지은 것입니다.
충정공은 군부대신, 영국 등 6개국 특명 전권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신식문명을 접하게 된 지식인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체결로 국권(國權)을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자 이 조약 폐기를 두 차례난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함에 1905년 11월 30일 새벽, 국민과 각국 외교관에게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短刀)로 자결 하였던 인물입니다.
이 정신은 이준열사(李儁烈士),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 등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지역을 '충정'이라 부른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충정공 민영환 유서
총정공 민영환은 한말 일본과의 5조약이 체결됨에 조약철회의 운동을 개시하다가 실패로 돌아가 동포(同
胞)들에게 호소하는 유서를 남겼는데
『 아!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치욕이 이지경에까지 다달았구나. 생존경쟁이 심한 이 세상에 우리민족의 운명
이 장차 어찌 될 것인가.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맹서하는 사람은 살아 나갈 수 있으니
이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다.
나 영환은 한 죽엄으로써 황은(皇恩)을 갚고 우리 2천만동포에게 사(謝)하려 한다. 영환은 이제 죽어도 혼
은 죽지 아니하여 황천에서 여러분을 돕고저 한다.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여!
천만배나 분려(奮勵)를 더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갖고 학문에 힘쓰며 마음과 마음을 합하고 힘과 힘을 아
울러 우리의 자유독립을 회복할 지어다. 그러면 나는 지하에서 기꺼히 웃겠다.
아! 조금이라도 실망하지 말라. 대한민국 이천만동포에게 마지막으로 고(告)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