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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의 눈부시게 하얀 겨울

겨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하얀 눈! 지난 겨울 서대문 홍제천에 가득 쌓였던 눈이 눈부시게 하얀 풍경을 그려놓았어요. ^^ 저마다 정수리에 몽실몽실 새하얀 눈을 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모르게 따뜻해 보이네요. 실제로는 무지 춥겠지만요 ^^ 홍제천을 떠다니던 작은 돛단배도 내리는 눈에 꽁! 하고 얼어버린 것 같아 보이죠? 펑펑 내리는 눈이 잔잔한 물에 파동을 쳐냅니다 ^^ 눈이 그치자 고요해진 홍제천. 추운 날씨에 가득 쌓인 눈이 곧 얼어 붙었겠죠? ^^ 지금까지 홍제천의 새하얀 겨울 이었습니다 ♡

홍제천의 푸르른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이 녹아 내릴 듯 강렬한 여름. 홍제천은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요~? 홍제천 주변의 주택과 아파트가 훤히 보입니다 ^^ 홍제천에 곱게 핀 붉은 나팔꽃이 푸른 여름에 매력을 더하네요 얼핏 보니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의 강 같죠? ^^ 도심에 자리잡은 홍제천의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저 멀리 돌다리를 다정하게 건너고 있는 풋풋한 커플도 보이네요. 저 잔잔한 물결이 보이시나요? 뜨거운 여름엔 정말 발을 퐁당 담그고 싶을것같아요~ 물이 정말 맑죠 ? :D 여름만큼 맑고 푸른 계절은 없는 것 같습니다! 홍제천 역시 여름에 맑은 빛을 유감없이 드러낸답니다~

다이어트와 성인병예방에 도움되는 즐거운 자전거 타기

여러분은 ‘자전거’ 하면 어떤 것이 생각나시나요? 자전거하면 각자 하나씩 떠올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을텐데요, 자전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풋풋하고 서정적인 로맨스를 더하는 요소로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가을동화의 베스트컷입니다. 자전거를 통해 멋진 풍경을 살리고 주인공들의 로맨스무드도 더욱 살려주었죠. 샤라라라라라라~ 유명한 음료광고의 한 컷 입니다. 데뷔 초 손예진씨의 모습이 정말 풋풋해보이네요.^^ 파란 하늘 아래 청순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아주 유명한데요, 자전거는 이처럼 ‘맑고 푸른’ 이미지를 가지고있습니다. 내 몸도, 지구도 건강해지는 1석2조 자전거타기  오늘은 이런 자전거를 타는 문화에 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 사실 우리나라는 자전거 보..

여인들의 죄를 묻지 않았다던 홍제천 이야기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에서 시작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길 홍제천은 세검정의 맑은 빗물이 홍제원 부근에서는 하천에 모래가 많이 쌓여 늘 모래밑으로 물이 흘러 사천(沙川)이라 하고 또는 홍제원 옆에 있는 개천이라고 하여 홍제천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러한 홍제천에 얽힌 가슴아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략으로 항복하게 되자 조선의 많은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 가게되었습니다. 그 중 심양으로 끌려갔던 사대부집 여자들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그들을 맞이하는 조정에서는 고민에 빠지자 이에 인조가 영을 내려 " 홍제원의 냇물에 목욕을 하고 서울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그런 후에 그녀들의 정조 문제를 거론하는 자가 있으면 엄단하겠노라고 하였다하니 얼마나 서글픔과 선조들..

천연동 천연정(반송정) 이야기

천연동 동명여자고등학교에 있는 자리에 조선 영조때 세운 「천연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나무 가지가 우산같이 옆으로 퍼져있는 소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하여 '반송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반송정」이라고도 하였다. 반송정은 무악재가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데 빼놓지 않았던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하였으나그 후 태종 7년(1407년)에 모화관이 건립되면서 연회자의 장소가 이곳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 17년, 일본 초대공사 화방의질(花房義質)이 이곳을 일본공사관으로 사용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일본을 배척하는 군인과 백성들의 습격으로 정자가 불타버리고 일본인은 인천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갔다. 또한 모화관은 원래 넓은 공지로 군사의 훈련 및 무사들의 시험장소로 ..

충정로 동명 유래

총정로란 동명(洞名)은 조선말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이던 죽첨진일랑(竹添進一郞) 이름을 본따서 죽첨정(竹添町)이라 부르던 것을 1946년 10월 1일에 조선말의 순국열사 충정공 민영환(忠正公 閔泳煥)의 시호인 '충정'을 뽄따 지은 것입니다. 충정공은 군부대신, 영국 등 6개국 특명 전권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신식문명을 접하게 된 지식인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체결로 국권(國權)을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자 이 조약 폐기를 두 차례난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함에 1905년 11월 30일 새벽, 국민과 각국 외교관에게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短刀)로 자결 하였던 인물입니다. 이 정신은 이준열사(李儁烈士),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 등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지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