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감성공간 이야기 02] - 조선시대 임금님의 응접실, 모화관과 영은문 본문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감성공간 이야기 02] - 조선시대 임금님의 응접실, 모화관과 영은문

함께해요 서대문/서대문 역사이야기 2012. 2. 13. 14:09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감성공간 이야기 02] - 조선시대 임금님의 응접실, 모화관과 영은문

[통통이의 희망 공간 이야기 02]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감성공간
조선시대 임금님의 응접실, 모화관과 영은문



 




안녕하세요!
지난주 홍제원에 이어 오늘은 모화관과 영은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귀를 활짝 열고 들어보세요!


  모화관
 

손님맞이 공간 : 조선을 방문한 사신들이 임금과 첫 얼굴도장 찍는 응접실


멀고 먼 여행길, 홍제원에서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한 중국사신 일행은 이튿날 무악재를 넘어 한성에 들어오게 됩니다. 모화관은 이 사신들이 한성에 오자 마자 처음 들르는 장소로, 임금은 이곳에서 사신들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사신들과 임금이 첫 만남을 가지는 응접실이었던 거죠.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하였던 모화관은 조선 건국 초에는 모화루라 불렀어요. 모화루 앞에는 영은문(迎恩門)을 세우고 남쪽에 못을 파 연꽃을 심었다고 해요. 후에 모화루의 규모를 확장하고 모화관이라 이름을 바꿔 불렀던 거랍니다.


 



왕은 이곳에서 사신들을 맞은 뒤에 경복궁 또는 창덕궁에서 외교문서 전달식을 진행하고 먼 길 온 사신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영은문

흔적의 공간 : 영은문과 함께 허물어진 역사 위에 다시 세운 독립문

 

영은문은 모화관 바로 앞에 세워진 문으로 지금의 독립문 바로 앞에 있었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영은문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어요. 청일전쟁 후인 1896년 사대사상의 상징물이라 하여 모화관의 이름을 독립관으로 바꾸고, 영은문을 헐어버린 뒤 독립문을 세웠기 때문이에요.

 
 

 




우리 나라가 독립국가로서의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 도중 영은문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허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문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영은문의 기둥을 세웠던 초석은 사적 제33호로 지정되어 독립문 바로 앞쪽에 있습니다.

 

 























조그맣고 연약했던 나라 조선, 그래서 우리나라는 주변 강대국에 기대어 갈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에요. 하지만 그러한 아픈 역사를 간직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바로 설 수 있었던 거랍니다.

  흔적은 인간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들 중에서도 그 힘이 강력한 것으로 꼽힙니다.
지금은 내 곁을 떠나 없는 사람이나, 이미 허물어져 다시 볼 수 없는 건물이라고 해도 그것들이 남긴 흔적은 오래 남아 그 잔상이 빈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유서 깊은 흔적이 남아 있는 우리 주위의 장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고 되새긴다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감성공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공간 이야기를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행복하게 시작하는 월요일!
통통. coming soon.



[통통이의 희망 공간 이야기 02]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감성공간
조선시대 임금님의 응접실, 모화관과 영은문


                                                                                        서대문 스토리크리에이터 강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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