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 이괄의 난
이괄은 인조반정때 광해군을 페하고 인조를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큰 공은 세운 인물이었지만
왕위에 오른 인조는 이괄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일등공신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즈음 중국에서는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원조하기 위하여 막대한 군비를 들였기 때문에
나라가 점차 쇠퇴하고 정변이 일어나 청나라가 만주땅을 근거지로 하여 세력을 점차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북쪽 국경지대의 방비가 급하게 되었으므로
인조는 이괄을 국경 방비를 담당토록 하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이전의 대우에 대해 불만을 품어왔던 이괄은 중대한 임무를 맡게되자
섭섭한 정을 풀고 평안도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은 이괄은 부원수에 임명되었고
자기보다도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장만이 원수가 되어서 이미 평양에 와 있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이끌고 서울을 향하여 공격해 옵니다.
이괄의 군대가 이미 벽제관에까지 다달았다는 보고를 접하자 서울장안은 큰 혼란이 일어났으며,
인조는 서울을 버리고 서대문을 나가 수원으로 피하고 이괄은 15일만에 서울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난을 평정하기 위해 평양에서 이괄의 뒤를 쫓아 군사를 몰고 온 장만은
밤을 이용해서 안산을 점령한 다음, 속임수로 평상시와 똑같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안산봉수대에서 횃불을 한번 들어보여 이괄의 군대를 안심시킵니다.
이 사실을 다음날이 되서야 알게 된 이괄은 상대방의 실력이 얕잡아보고 성내에 있는 관민들에게
" 장만의 군대쯤은 단숨에 무찔러 보이겠노라,
싸움을 구경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성위에 올라서 구경하라"
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성벽에 모인 구경꾼이 어찌나 많았던지 인산인해를 이루어 백로떼와 같았으며 이괄군에 의해서 옹립된 새임금 흥안군도 인왕산 언덕에 올라와 구경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괄의 군사와 장만의 군사는 안산의 험준한 비탈길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장만이 거느리는 군사들은 기슭에서 치밀어 부는 모래바람 때문에 몹시 괴로움을 당하였으나
후에 바람이 부는 방향이 바뀌어 이괄의 군대편으로 홍제천의 모래바람이 불어 내리는 통에
이괄의 군대는 제편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형세는 역전되고 결국 이괄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 이 고개를 '사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안산 아래쪽 봉우리를 '승전봉'이라 불립니다.)
싸움에서 패한 이괄은 산에서 내려와 서대문을 거쳐 성안으로 도망치려 하였지만
서대문 근방에 사는 주민들이 서대문을 똑 닫은채 열어주지 않아
이괄은 하는 수 없이 남대문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그날 밤에 광희문으로 빠져 나가서 이천으로 도망치던 도중에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이괄의 난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