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으로 - 서대문 옛날 이야기 (충정로동) 어물시장, 미나리밭으로 유명한 동네 본문

역사속으로 - 서대문 옛날 이야기 (충정로동) 어물시장, 미나리밭으로 유명한 동네

함께해요 서대문/서대문 역사이야기 2012. 3. 26. 17:08

어물(魚物)시장, 미나리밭으로 유명한 동네


 
역사속으로 
미나리밭으로 유명한 동네 충정로동 이야기 1.

충정로
란 동명(洞名)은 조선말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이던 죽첨진일랑 이름을 본따서 죽첨정이라 부르던 것을 1946년 10월 1일에 조선말의 순국열사 충정공 민영환 (忠正公 閔泳煥)의 시호인 충정을 참고하여 지은 것입니다.

 충정공은 군부대신, 영국 등 6개국 특명 전권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신식문명을 접하게 된 지식인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체결로 국권(國權)을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자 이 조약 폐기를 두 차례나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함에 1905년 11월 30일 새벽, 국민과 각국 외교관에게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 (短刀)로 자결하였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정신은 이준열사(李儁烈士),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 등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지역을 충정이라 부른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충정로지역은 1,2,3가로 나누어져 있는데, 충정로 1가는 1975년 10월 1일 종로구와 중구에 편입되고 현재는 충정로 2,3가만 서대문구 관할구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종로구에 속한 충정로 1가의 현재 적십자병원 자리는 조선초(1393)에는 경기도청에 해당되는 경기감영(京畿監營)이, 일제 때(1914)에는 고양군청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중구에 속한 충정로 1가 지역에는 1930년부터 최근 대중문화의 중심지였던 동양극장이 있었으나 헐리었습니다.

 충정로 2가는 조선시대에 반송방(盤松方)에 속하여 권정승계, 조판부사계 등의 명칭이 있음을 보아 고관대작 들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충정로 3가와 더불어 미나리밭이 많은 지역이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경찰청 북쪽의 미근동 31번지 부근에는 큰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항상 물이 넘쳐 흘렀으며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아 우물에 꼬리가 있는 것 같다하여 초리우물 또는 미정이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尾 가 美로 바뀌고 또한 이 일대가 미나리밭이였기 때문에 근동(近洞)이라 하여 두 글자를 합쳐 미근동이라 하였습니다.

 

 

미근동, 즉 미나리가 물결치는 동네라는 뜻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인데요.
미근동은 1970년 이전까지 합 미근동사무소가 관할하였으나 그해 5월 19일 합동사무소로 바뀌면서 이곳에서 행정을 담담하다가 1975년 10월 1일부터 충정로동사무소 관할 구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의 경찰청(미근동 209)자리는 전매청 서울 담배 제조창이 신탄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자리잡고 있던 곳이기도 하죠.
 

합동지은 마포강으로 부터 어물(魚物)이 서소문(西小門)밖 시장에서 집결되어 소비되었던 곳으로 특히 각종 건어(乾魚)와 조개가 항상 끊어지지 않고 공급되었기 때문에 이곳 일대를 조갯골이라 하던 것이 한역(漢譯)되어 합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서소문 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서울특별시종합건설본부와 상수도 사업본부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자리는 서대문구청이 연희동으로 이전하기 전(1977.5.16)까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죠.


합동도 일제 때 합정으로 변했다가 광복 이듬해(1946.10.1) 다시 합동으로 개칭되었고, 1955년 지방지치법 시행때 의주로 1,2가와 미근동과 함께 합미동 사무소 관할이었으나 1975년 관할구역 조정으로 남쪽의 반은 중림동에 흡수되고 북쪽의 반은 옛날 미나리 밭이 있었던 지역만 서대문구에 남아서 현재 충정로 동사무소 관할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 구전되어 오는 옛날이야기.. 어떻게 보면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한번쯤 우리 지역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이어 다음 포스팅 내용도 충정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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