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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 서지, 천연정, 독립관 등이 있는 마을 (천연동)

함께해요 서대문/서대문 역사이야기 2012. 4. 13. 15:27

서지, 천연정, 독립관 등이 있는 마을 - 천연동


지난 번 충정로동에 이어 이번에는 천연동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연동, 냉천동, 영천동 및 옥천동이 합하여 현재는 천연동사무소 관할에 있었는데, 그중 천연동은 금화산 기슭에서 금화초등학교를 안고 있는 동네로 동명 유래를 보면 천연동 31번지에 무악재를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환영 및 송별 행사장으로 사용하였던 천연동아라는 정자(亭子)가 조선 영조 17년(1741)에 세워져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천연동아라고 불렸으며 이곳을 조선말에는 경기중군영으로 쓰였으며 또한 최초의 외국사관인 일본 공사관으로 사용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이 곳은 이판동과 석교동의 각각 일부라고 하였는데 이판동은 이 지역에 이판서가 살았다 하여 유래된 것이며, 석교동은 현재 금화초등학교 북동쪽 의주로변에 돌다리가 있었다 하여 불렸던 이름입니다. 단순하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금화초등학교 거리에는 북동쪽 의주로변에 돌다리가 있었다 하여 불렸던 이름입니다. 또한 금화초등학교 자리에는 둘레가 일백오십여보가 되는 연못이 천연적으로 만들어져 천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 광복 후 1947년 말부터 1955년까지는 천연동회, 냉천동회, 옥천동회, 영천동회의 4개의 동회가 천연동, 냉천동, 옥천동, 영천동을 관할하고 있다가 천연동은 1955년 옥천동과 함께 석교동사무소에 속했으나 1937년 7월 1일 천연동 사무소로 고치고 1975년 10월 1일 냉천동, 옥천동, 영천동과 함께 행정구역상 천연동사무소 관할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냉천동은 무악산의 지맥(地脈)으로서 여기저기서 약수(藥水)가 많이 나왔던 곳이며, 특히 경기대학교 북쪽지역 부근에 맑고 찬 우물이 있었으므로 찬 우물골 즉 냉동을 냉천정이라고 고쳤으며 해방과 더불어 냉천(冷泉)동으로 다시 개칭되었습니다.



 또한 냉천동의 행정을 담당하던 냉천동사무소는 1975.10.1일에 폐동되고 천연동, 옥천동과 함께 천연동사무소의 관할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감리교신학대학, 천연동사무소 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옥천동이라는 이름은 인왕산(仁王山) 밖의 안산(鞍山)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연천시장을 지나 마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 개울이 있어 이 지역에서 물이 모여 내리는 맑은 폭포가 되어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다 하여 조선시대에는 옥폭동이라 불려진 것이 일제 때는 옥천동으로 변했다가 1946년 10월 1일에 일제식 동명(洞名)을 없애기 위해 옥천동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인근의 교남동, 교북동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독립문이 서있는 자리에서 서대문 로타리로 흘러내리는 냇물을 건너가기 위한 다리가 놓여있었고, 그 다리의 남쪽, 북쪽이라는 뜻에서 이와같이 불려진 것인데요.. 옥천동은 1955년부터 석교 동사무소에서 관할하였으나 그 후 천연동 사무소로 개칭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천연동사무소 관할 동(洞) 중에서 무악재 쪽으로 가장 가깝게 있으며 금화산 동쪽에 위치한 영천동은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관후동, 장원정동 일부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1914년 4월 1일부터 이곳을 경성부 관동이라 칭하였는데 이것은 모화관(영천동 65번지)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일본인들이 격하하여 불렸던 이름입니다. 그 후 영천동이란 동명은 광복 후 우리의 토속적인 지명사용 노력으로 무악재 밖의 마을, 즉 악밖골의 약수인 영천이라고 부르던 약수가 유행하여 그 이름을 따서 불려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지역에 구전되어 오는 옛날이야기.. 
어떻게 보면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한번쯤 우리지역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이어 다음 포스팅 내용도 우리고장의 따뜻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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