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약속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작품인 <족장의 가을>을 읽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소설 읽기는 오랜만이었지요. 작가는 7년 전, 87세로 타계하셨습니다. 마르케스는 라틴 아메이카 문학의 거장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족장의 가을> 읽기는 많은 인내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백년의 고독(1967년 출간)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바로 집필에 들어간 족장의 가을(1975년 출간)은 완성하는데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1983년 초판본 이후에 절판되었는데 40여년 만에 새로운 번역(송병선 교수 옮김)으로 2021년에 독자들에게 선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작가가 가장 사랑한 소설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 소설을 일컬어 '시어(時語)로 쓴 소설'이라고 하니 어떤 느낌인지 짐작이 가시는지요? 시적인 감수성이 작품에 깔려 있는데 한편으로는 전반적으로 난해하기도 합니다. 한 문장이 수십 페이지로 이어져 있어 쉼표(,)로 이어진 문장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합니다. 모호한 시공간과 서술구조는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갖게 하지요. 이 소설은 번역자의 말대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여러 번을 읽을 때 비로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독재자들의 기행을 '족장'이라는 인물에 집약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20세기 동안이나 권좌에 있었던 한 독재자의 200년에 걸친 통치에 압축된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합니다.
카리브해에 자리 잡은 상상의 공화국에서 가장 늙은 족장은 저속하고 잔인한 한편, 권력에 대해서만은 비상한 본능을 갖고 있는데, 모두를 불신하고 의심하며 관저마다 자물쇠롸 빗장을 걸고 생활합니다. 그 잔인함을 뒤로 하고 그가 느꼈을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을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을은 죽음의 상징과 같은 계절이지요. 족장이 저지르는 수많은 기행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쿠바,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등)에서 실재했던 독재자들의 특징을 떠올리게 합니다.
족장의 가을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생각해 보면서 과연 '내 인생의 가을'은 어떤 빛으로 다가올 것이며 어떻게 살아여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가을이 주는 품성함 속에 숨겨진 서늘함과 쓸씀함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살면서 생각보다 앞서는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 삶의 무상함 앞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과연 어떤 마음이 될까요? 강렬한 색채의 표지 그림을 보면서 카리브해의 쪽빛 바다를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마르케스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께 올해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 족장의 가을을 추천합니다.
긴 호흡으로 읽는 소설의 재미를 느껴 보시는 것도 새로운 독서방법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