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의 기묘한 이야기, 최초의 한문소설 김시습의 금오신화!
노란 산수유꽃이 여기 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네요. 이번 달에는 김시습(1435(세종 17)~1493(성종 24))의 금오신화를 읽었습니다.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입니다.
다섯 편의 신화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가끔은 나 자신이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김시습의 호는 ‘매월당’(梅月堂)이지요.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평생을 방랑길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김시습은 불의한 세상과 정면으로 승부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소설을 통하여 고통을 승화시켰다고 하네요. 김시습이 삼십 대에 약 7년 동안 경주 금오산에 머무르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신화는 제목만 들어도 현실세계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다섯 편의 신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세계에서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에 있는 ‘만복사’라는 절에서 저포 놀이를 하면서 왜구의 침입으로 귀신이 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생규장전>은 ‘이생’이라는 송도 사람이 담 너머로 엿보는 세상이야기로, 천생의 연분을 만났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생이별을 겪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취유부벽정기>의 무대는 평양이며 홍생이라는 사람이 선녀나 용왕님을 만나서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신선놀이를 하는 무릉도원 같은 이야기랍니다.
<남염부주지>에서는 견딜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염라대왕을 만나 정치토론을 펼칩니다. 작품의 무대는 경주랍니다.
<용궁부연록>은 송도에 사는 한생이라는 사람이 용궁잔치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두루 구경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신비롭게 펼쳐집니다.
금오신화의 이야기는 엉뚱하지만 재기가 넘칩니다. 그러면서도 지식인의 깊은 고뇌가 배어 있기에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인간 본연의 내면적 갈등을 읽을 수 있었지요. 전쟁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살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신화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에 바로 매월당 김시습이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화 속 주인공들은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도 결코 낙담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가치를 찾아 나서며 운명에 굴하지 않는 정신은 오늘날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지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다간 김시습의 일생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다섯 편 모두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보입니다.
따뜻한 햇살과 봄바람을 벗 삼아 금오신화를 읽어 보세요. 소설의 한문 원본도 수록되어 있어서 한문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더욱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마다 실려 있는 멋진 시구절을 소리 내어 읽는 재미도 꽤 좋습니다. 소리 내어 읽다보니 제법 리듬을 타면서 낭랑하게 읽어지는 작은 기쁨도 느껴본 책이기에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