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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이야기 기획시리즈 3] 서대문의 숨어있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서 - 독립문의 건립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

서대문TONG 2013. 8. 30. 10:10

<서대문이야기 기획시리즈 3>

서대문의 숨어있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서 

- 독립문의 건립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


서대문구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장소 중 하나! 바로 서울의 근대공간 중 하나인 독립문인데요.

오늘은 이 독립문의 건립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로 해요^^


- 사적 : 제32호 지정(1963.1.21)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941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5분)

- 전화번호 : 02-330-1410(서대문구청 문화체육과)

- 운영시간 : 종일

- 휴무일 :  연중무휴

- 입장료 : 없음

- 주차 : 가능

- 분류 :  역사, 문화유적



서울의 서대문구 현저동에는 개선문처럼 생긴 화강암으로 만든 문이 서 있는 바로 이 문이 바로 독립문입니다. 독립문을 자세히 보면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좌우에 화강석 돌기둥을 세우고 중앙을 아치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그 안쪽에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돌층계와 출입문을 만들었습니다. 옥상에는 돌난간이 둘려져 있고, 문 앞에는 영은문의 주초(柱礎)였던 돌기둥이 남아 있답니다.



독립문의 전체적인 모양은 위 사진의 모습인 프랑스의 개선문과 닮았지만, 석재를 쌓는 방법이나 돌기둥의 캐피탈은 서양인 기술자가 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서재필(徐載弼)이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러시아인 사바틴이라고도 한다)가 설계를 했지만, 공역(工役)은 한국인 건축기사인 심의석(沈宜碩)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독립문의 이맛돌에는 대한제국의 문장(紋章)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문 정면과 뒷면에는 좌우에 태극기가 새겨지고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 ‘獨立門’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현판석(懸板石)이 있고, 이것은 독립문건립을 제안한 서재필이 그 사업을 국민국가 건설의 상징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독립문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사대외교(事大外交)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헌 자리에 세워졌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884년의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실패한 뒤 미국에 망명해 있던 서재필은 박영효의 권고로 1896년 귀국하면서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울 것을 당시 뜻있는 인사들에게 발의하였다고 합니다.



관민들의 폭넓은 지지 속에서 1896년 6월, 독립문 건립계획이 구체화되고, 9월 6일 국왕의 동의 하에 서재필의 책임 하에 독립문을 건립하도록 하였습니다. 독립문을 건립하면서 조선시대 중국 사신에게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었던 모화관(慕華館)도 독립관(獨立館)으로 바꾸고, 11월 21일 대대적인 정초식(定礎式)을 거행하였고,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문은 1917년 수리공사를 한 적이 있고, 1928년에는 기초가 내려앉을 위험이 있어 조선총독부에서 공사비 4000원을 들여 경성부에 위탁하여 크게 수리한 바 있으며,그 당시 벽체 안쪽에 새로운 재료인 철근콘크리트를 보강하였다고 합니다.




1979년 성산대로 공사로 이전이 불가피하게 되어 그 자리에 ‘독립문지. 이전일자 1979. 7.13. 서울특별시장’이라고 새겨진 기념동판(가로·세로 각 70㎝)을 묻고 원위치에서 서북쪽으로 70m 떨어진 지점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이전공사는 1980년 1월에 끝났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독립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독립문 앞에서 바라 본 일출과 야경영상 한번 보시겠어요? 

멋지지 않나요?



가끔씩 서대문구의 독립문을 보시면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있는 문화유산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