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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민주페스티벌] 대한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스승, 백범 김구

놀러와요 서대문/독립민주축제 2012. 8. 8. 13:48
[서대문독립민주페스티벌] 대한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스승, 백범 김구


세 가지 소원들 들어준다는 램프의 요정 지니! 여러분에게 램프가 있다면 어떤 소원들을 비실 건가요?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라는 소원은 꼭 하나씩 차지할 것 같고요. ^^

가족의 건강이나 좋은 직장으로 취업하는 일, 가고자 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 등등.. 세 가지 소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황홀한 일이죠.



그런데 세 가지 소원을 빌라고 했을 때, 세 가지 모두 똑같은 소원만을 말한다면..

그 열망은 얼마나 크고 굳은 것일까요?


‘나의 소원은 대한의 독립이오, 나의 두 번째 소원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하느님이 다시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시면 더욱 소리 높여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대한의 완전한 독립을 소망하는 이 외침은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의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



백범 김구 선생님은 일제 침략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을 지내며 독립 운동을 전개한

독립 운동가이자 정치가입니다.


1894년 명성 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를 죽여 사형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지만, 고종이 그 형을 줄여 후일 민족의 독립에 큰 기둥이 될 수 있었죠.


김구 선생은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감시와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국내에서는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좁쌀 장사로 가장해 중국 상해로 들어갑니다.선생은 그 안에서 안창호, 신익희, 윤현진, 서병호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내무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28년에는 한국독립당을 조직해 총재가 되고,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하며 일본에 항거하는 무력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왕 사쿠라다몬의 저격 사건,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 등도 김구 선생의 지휘 아래 일어난 일입니다.



김구 선생의 친필 <독립만세>


김구 선생의 나라 사랑은 단지 자주 독립에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북 통일에 누구보다 힘쓴 인물 또한 김구 선생이었는데요. 

통일 정부 수립을 목표로 <3천만동포에게 읍고함> 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마음 속 38선을 무너뜨리자고 강력히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분단된 상태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를 세우는 것보다는 통일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1948년 5.10 제헌국회의원선거를 거부하고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행을 택합니다. 하지만 통일정부의 수립은 결국 실패하고 말죠. 남한과 북한은 각각의 정부를 서울과 평양에 세우게 됩니다. 


민족 통일 국가를 염원하던 김구 선생. 하지만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0분, 서울 경교장에 울린 4발의 총성과 함께 선생은 숨을 거둡니다. 당시 육군 소위 안두희가 김구 선생을 암살한 것입니다. 

선생의 암살은 여러 배후가 의심될 뿐 뚜렷한 전모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채입니다.


1949년 7월 5일 김구 선생의 영결식 장면


평생을 나라의 독립에 바친 김구 선생. 단지 일본이라는 나라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하나가 된 온전한 대한을 꿈꾸던 그 바람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숭고한 뜻은 우리 후손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의 역사를 뜻깊게 기릴 수 있는

2012년 서대문독립민주페스티벌!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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