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고 향기가 전해지는 대화가 그립다
우리는 매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단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는 날은 없겠지요. 가족, 친구, 형제 자매, 스승, 이웃 등과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때로는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겠지요.
오래 전에 읽고 참 좋은 책을 읽었구나... 했던 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화』라는 책인데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선생님께서 나누신 대담을 채록한 것입니다.
책을 정리하다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지요. 평생을 소년 같은 마음으로 살다가신 수필가이자 시인이며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님, 제13대 국회의장을 지내신 김재순, 종교인이자 많은 저서를 남기신 법 정 스님,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최인호 소설가. 이렇게 네 분의 대담집을 읽으면서 참다운 대화가 주는 향기에 젖어 보았고, 마음 속으로 잔잔한 감동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 책읽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흩어지면서 공허해지는 대화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솔한 대화를 얼마나 나누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피천득 선생님과는 작고하시기 전인 2004년 11월에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누었기에 지금까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첫 시집을 낸 후의 만남이었지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시는 문학의 꽃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감동이 전해지도록 맑고 좋은 시를 쓰기 바랍니다.”라는 말씀으로 저를 격려해 주셨지요.
네 분이 삶의 여러 주제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담백하면서도 깊이있게 다가왔습니다. 기도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 순간을 나 답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 자연에서 찾는 행복이 오래도록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는 것, 생활은 단순하고 검소하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앞으로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사랑하고 상처 받으며 다시 치유해가는 과정이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요? 나이듦에 대한 글은 성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요. 편안한 문체로 씌어졌기에 고요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은은한 국화차 향기를 음미하며 마시듯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노라니 어느 순간 다 읽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네 분의 말씀 중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봅니다.
* 잘 늙는 경지에 이르면 아름답고, 죽음이 두렵지 않다. -피천득
*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 종교가 있다면 역사와 정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김재순
*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음미하는 것. 그것이 느리게 사는 것이며 여유있게 사는 것이다. -법 정
* 지성인이 지식인과 가장 다른 점은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최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