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긴 사모곡이자 투쟁기록인 『새벽의 약속』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안 작가, 로맹 가리의 작품인 『새벽의 약속』을 읽었습니다. 프랑스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로맹 가리의 천재성에 반하여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요.
로맹 가리는 ‘에밀아자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자기 앞의 생』은 에밀아자르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입니다. 여러 필명으로 많은 소설을 발표했지요.
소설의 첫 시작은 ‘끝났다’이며 ‘나는 살아냈다’로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은 어머니를 향한 긴 사모곡이며 작가 자신의 투쟁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자전적 소설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 ‘니나’는 오직 하나 뿐인 아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지요. 심한 가난을 겪기도 하고 큰돈을 벌기도 하면서 때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멸을 당하면서도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주인공 로맹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 어머니의 뜻을 따르고자 합니다. 성장하면서 여자들과의 사랑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기고 하고 상처받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니나는 아들이 조국(프랑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원하며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지 않고 애원하지 않는 어머니, 아들이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고 위대한 작가가 되기를 바라며 교육을 위한 것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어머니의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 그리고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동시에 추구하는 목표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니나 자신이 당뇨를 앓으면서 인슐린 주사를 매일 맞아야만 하는 상황을 2년여나 숨기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언가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탓하게 되지요. 그러나 어머니와 로맹은 서로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탓하지 않았기에 믿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프랑스 대사가 되기까지 로맹의 투쟁기는 고독했을 로맹의 삶을 반추하게 합니다. 고독했으나 행복했던 로맹! 그 뒤에 어머니의 믿음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로맹은 프랑스를 떠나 영국의 전쟁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편지를 받습니다. 앞날을 위하여 앞으로 전진하라는 어머니의 편지글……. 그러나 니나는 로맹이 영국으로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납니다. 로맹이 받은 편지들은 니나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미리 써 둔 250여 통의 편지였지요. 니나는 편지를 친구에게 전해주면서 아들에게 날짜별로 보내주기를 부탁하는데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배경이 되는 바닷가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문체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구절도 많지요. 가끔씩 아름다운 문장을 소리내어 읽노라면 프랑스의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마음을 울리는 책이 필요하다면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을 권합니다.
타협하지 않고 종속되지 않으며 살다 간 로맹 가리의 소설을 읽으며 문학의 향기를 듬뿍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아름답게 묘사된 프랑스의 자연과 어머니와 아들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면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되겠지요.
어머니의 편지 중에서 아들을 향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네게 애원하니 나를 생각지 말고, 나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다오. 넌 이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닌 어른이라는 점을. 너 혼자라도 네 두 다리로 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 그리고 무엇보다 빨리 아름다운 책을 쓰도록 해라. 그러고 나면 어떤 일이 있어도 훨씬 쉽게 위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넌 항상 예술가였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용감해야 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우리가 헤어진 지 어언 여러 해가 지나구나. 난 이제 네가 날 보지 않는데 길이 들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결국 난 영원히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너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일이 없음을 명심해라. 네가 집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나는 달리 할 수가 없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