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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순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서대문블로그시민기자단 2020. 8. 27. 09:36

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순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근본적인 인간 실존문제를 다룬 책,『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었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깊은 울림이 있는 책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출생한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으로 2004년에 출간되었고 23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혀지고 있는 책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주인공의 깊은 내면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대학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는 메르시어의 내면세계가 이 책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영화도 좋았지만 역시 책읽기가 더 좋았던 이유는 짧은 시간동안 상영되는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지요. 우연히 만난 여자로 인해 야간열차를 타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떠난 주인공, 그가 그곳에서 한 사람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의 깊은 고뇌와 철학적인 메시지가 가득한 소설입니다. 



  의사인 아마데우가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인간백정을 살려내며 ‘나는 의사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읽을 때는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물음이 자신에게 던져졌을 때 순간적이지만 얼마나 갈등을 했을까요. 자신이 택한 결정을 믿고 사람을 살려내는, 병실에서의 긴박한 상황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그려졌고 전율했습니다. 



 양심은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또 사랑은 무엇인가요.

‘천박한 허영심은 우둔함의 다른 형태’라는 구절은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화두 같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해요. 우둔함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는 천박한 허영심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학생들에게 고전문학을 강의하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그의 생애 최초로 일탈을 감행하는데 그것은 출근길에 만난 낯선 여인의 자살을 막으려고 하면서 시작됩니다. 포르투갈의 작가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를 들고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로 여행을 떠나면서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아마데우의 흔적을 좆는 그레고리우스의 발걸음을 저도 따라가 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입을 빌어 ‘내가 인식하는 자아와 타인의 눈에 드러난 자아’ 사이를 파고듭니다. 메르시어가 지향하는 언어와 철학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지요. 조지, 주앙, 스테파니(프라두의 친구들)의 삶의 철학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이 책은 근본적인 인간 실존문제에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것을 지향하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유난히 영특한 아마데우의 이면에 감추어진 아픈 진실들, 척추경직증 때문에 일생을 고통 속에 살았던 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상처받기 쉬운 인간성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조르지가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좌절하며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깊게 번민하는 모습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렸습니다. 이념과 본능에 충실하게 살 수 만은 없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겪게 되지요.



 영혼을 울리는 이 책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아마데우의 날카로운 사고와 고뇌에 공감하면서 ‘나’에게서 떠나 다시 ‘나’로 돌아온 그레고리우스의 인간적인 따스함에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야간열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갔다가 다시 자신의 삶의 터전인 베른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시적인 흐름! 야간열차는 바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라고 결론짓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싶은 분들께 유럽문학의 현대고전이라 불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권합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 속으로 함께 떠나보셨으면 합니다. ‘나’의 길과 ‘나’의 눈빛을 찾아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