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천도서]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 그림을 만나러 가다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푸른 두건을 쓴 소녀의 맑은 눈망을에서 순수한 영혼을 읽었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화가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입니다. 단아하면서도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 그리고 동그란 진주 귀고리와 복숭아빛 볼과,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발그레한 입술의 소녀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그림이지요? 마음 울적할 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그림'을 오래도록 보았던 오래전의 시간이 기억납니다.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를 집필한 김필규 작가는 영어를 전공하였는데, 취미로 즐기던 조형예술(회화, 조각, 건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12년 전에 대학원에 입학여 현재 미술사학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요. 작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게 되면서 더 깊은 공부를 하게 된 것일테지요.
작가는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 하듯이 그림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알려 줍니다. 평생을 사업에 힘쓰던 할아버지가 자신이 감동했던 작품들을 손자 손녀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 안에는 단지 그림을 보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미술작품을 감상하하는 것은, 창의력을 키우고 풍부한 정서를 갖게 하며 감수성이 길러진다는 것을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수많은 명화들을 한 편씩 소개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역사, 시대적 배경,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소곤소곤 이야기 하듯이 글로 풀어내는 역량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과 설명을 읽다보니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지요. 그림 속에 담겨있는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엮여집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 그림은 1911년에 도난당했다가 2년 후에 되찾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어요. 베르사유 궁에서 루브르로, 앙부아즈 성으로, 다시 앵그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가 현재의 루브르로 다시 돌아온 모나리자는 지금은 방탄유리 속에서 전시되고 있답니다.
미켈란젤로는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하지요? 그가 그린 <천지창조>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정교하고 아름답고 사실적입니다. 신비로운 색채가 주는 황홀함,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이 마치 살아있는 듯 합니다. 서양명화들은 신화를 이해하면 훨씬 더 친밀하게 우리들 마음 속으로 다가옵니다. 신화와 그림은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최후의 심판>앞에서는 한없이 숙연해짐을 느끼지요.
르네상스에서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거쳐 인상주의, 표현주의부터 상징주의. 초현실주의에서 모더니즘을 거쳐 추상표현주의에서 팝아트까지 시대를 거쳐오면서 변화되는 미술사를 읽으며, 서양미술에 대하여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지식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인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보면서 문득 오래전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보았던, 키가 담장을 넘을만큼 컸던 해바라기와, 무주구천동에서 밤하늘을 빛나게 하던 샛노란 별무리, 까마귀 울어대는 시골밤 풍경이 가슴 시리도록 그리워졌습니다. 그리고 고독했던 고흐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대체적으로 작은 그림만을 책에서 보아왔기에 이번에 읽은 책은 매우 좋았습니다. 양질의 종이에 제대로 인쇄된 그림이었기에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가지 단숨에 읽어야하는 책이 아니어서 참 좋았습니다. 한 편의 그림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그림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그렇게 서너 편쯤 읽으니 하루가 행복해 지더군요. 지금 내가 보고 싶은 친구에게, 또는 그림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선물하면 좋겠습니다. 오래도록 책상에 펼쳐질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림책! 그것도 할아버지가 읽어주시는 그림책이니까요.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지요. 자연 풍경에 사람이 있음으로 완성되는 그림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 울림속에서 때로는 잊고 있었던 삶의 향기를 맡게 됩니다. 기쁘고 빛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요. 슬픔이 승화되었을 때 찬란한 아름다움을 가슴에 안을 수 있습니다.
가을이 느껴지면서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인인 '잔느'가 말을 걸어오고 있는 듯 합니다. 그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요? 밝고 따스한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닐까요?
제가 아는 어떤 지인은 몇 년 후 쯤 러시아 미술관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합니다. 오로지 미술작품만을 보는 여행!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녀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림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에게서 바이칼 호수처럼 펼쳐지는 러시아의 그림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