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100가정 보듬기 사업 -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느껴져요 본문

서대문 100가정 보듬기 사업 -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느껴져요

사랑해요 서대문/복지와 여성 2011. 5. 30. 14:28

흔히 요즘 경제가 여전히 어렵다고 말합니다. 정부에서는 작년에 비해 얼마큼 나아졌네 하며 여러 숫자를 보이며 열심히 설명하지만 우리가 뭘 알겠습니까... 우리가 실감하는건 여전히 무섭게 오르기만 하는 물가 뿐인 듯 합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딱한 사정을 가진 우리 이웃에게 내미는 서대문지역사회공동체의 따뜻한 손길 "서대문 100가정 보듬기 사업"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에 벌써 50가정을 향해 순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름다운 이웃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감사해 하시는 수혜자 분들의 진심어린 이야기를 이제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영준이네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 같이 들어보실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둠에서 어둠으로 태어나다


사람들은 흔히 탄생은 어둠에서 빛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의 탄생은 어둠이었습니다. 축복받았어야 했던 저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각 1급 장애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것이 앞으로 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1970년에 태어난 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의 품속에서 자랐고, 여의도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별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앞으로 닥쳐올 시련에 더더욱 힘들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자라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가정 형편상 대학은 꿈도 못 꾸었지만 그래도 저는 사회에 나간다는 기대감에 나름 부풀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절망의 벽 앞에 서서


사회에 나간다는 것은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취직한 첫 직장인 모 제빵회사. 열심히 일하고 싶었지만 제 눈은 메뉴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저는 채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1급 장애를 안고 있다는 이유로, 일반인으로 살아갈 기회를 박탈당한 것 같아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가족의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급기야 부모님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갈등으로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고 저와 형제들은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장애인으로서 할 일이 한정적이었던 저로서는 안마기술을 배워 출장 안마를 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점점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들은 그런 저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와 형제들은 저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홀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형편도 좋지 않고, 장애까지 안고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 하겠습니까.



 


연(緣)을 찾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국제결혼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가족들과의 회의 끝에 형님과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마지막 인연을 찾을 기회였습니다. 여러 번 맞선을 보았지만 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형형색색의 어른거리는 실루엣뿐이었습니다. 형님이 어떤 여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제가 어림잡아 상상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한 명의 여성이 보였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제 눈에도 다소곳하게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운명이었는지 저는 그녀를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는 19,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저의 장애도 그녀는 이해해 주었고, 그렇게 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도 저를 환영해 주었고, 그렇게 저의 신혼살림은 북아현동 재개발지역의 반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던 저에게 드디어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끊어지지 않은 불행의 씨앗


결혼 한지 1년, 드디어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 수도 있을 희망이 바로 아이였습니다. 불규칙한 수입으로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던 날,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눈동자는 저를 닮아 초점이 흐려져 있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사실에 아내도 먼 이국땅에서 절망을 느꼈습니다. 나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저의 병이 아무런 죄가 없는 아이에게 전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죄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슬프게 우는 아이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함께 앉아서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4급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슬퍼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내의 젖을 빠는 아이는 너무나도 예뻤습니다. 아내도 그런 아이를 보며 다시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무섭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낮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아현 감리교회 야간 다문화 교실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 열심히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둘째의 임신. 둘째는 아니겠지 하던 우리들의 희망도 저버린 채 첫째보다 더 심한 장애를 안고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작은 희망마저 무너져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조차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힘든 시련만 주시는 걸까 원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내와 저는 다시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내 아이는 꼭 훌륭하게 키우자.’고 다짐했습니다.


아내는 한국어가 능숙해지자 다른 다문화 가정의 해결사가 되어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에서부터 시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아내가 저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만나다


절망 속에 시작된 새로운 희망. 그러나 그 희망도 곧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제가 종로노인복지관에서의 노인분들의 안마로 받는 비용은 월 고작 10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월 24만원의 장애연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우리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역시 부족했습니다. 아내의 아르바이트도 큰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뉴타운 개발과 맞물려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정말 끝없는 낭떠러지 위애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직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느낀 것은. 우리 가족은 새롭게 시작되는 서대문구청의 100가정 보듬기 사업의 첫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희성당의 주임신부님이 우리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분을 후원 해 주셨고, 우리는 한 칸짜리 반 지하 쪽방에서 꿈에 그리던 두 칸짜리 조금마한 집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는 아이들의 방이 생겼고, 베트남에서 장인 장모님도 오셔서 따로 주무실 수가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밝은 미래를 꿈꾸다


우리 큰 아들 영준이는 꿈이 많습니다. 소방관, 경찰관, 선생님, 택시기사, 가수 등등, 그 중에서 택시기사가 꿈인 이유는 시력 장애로 차를 운전할 수 없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 나중에 눈이 좋아지면 가족들을 태우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서 갖게 된 꿈이라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그런 영준이가 기특하고 고마우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와 아내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작아도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을 건강하고 밝고, 훌륭하게 키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환경이지만 더 열심히 일해 우리보다 못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가족은 4명 중 3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눈으로 세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지금 우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더욱 끈끈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내를 친딸처럼 보살펴주신 아현 감리교회 000목사님, 물질적인 도움을 주신 연희성당 주임 신부님, 그리고 서대문구청의 노력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으로 우리는 아직 희망을,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결코 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시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시죠? 
이렇듯 좋은 마음, 좋은 생각들은 나눌수록 따뜻해지는 것일겁니다.

작은 희망의 이야기가 큰 꿈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희망의 이야기를 덧글로 많이 남겨주세요.
참! 두번째 가정은 어떤 희망의 노래를 들려줄까요! 기대해주세요~^^

15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