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축제] [2013 독립민주페스티벌] 대한광복단 창설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에 다녀왔습니다. <그들, 일제의 심장을 쏘다> 본문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축제] [2013 독립민주페스티벌] 대한광복단 창설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에 다녀왔습니다. <그들, 일제의 심장을 쏘다>

함께해요 서대문/기자단이 본 세상 2013. 9. 23. 08:34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축제] [2013 독립민주페스티벌]

대한광복단 창설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에 다녀왔습니다. 

<그들, 일제의 심장을 쏘다>


지난 8월 13일부터 오는 10월 13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 제12옥사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독립민주페스티벌을 앞두고 제12옥사에 다녀왔습니다. 사진과 함께 내용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게요.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관람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12옥사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는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가 주최 ․ 주관하는 <대한광복단 창설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 - 그들, 일제의 심장을 쏘다>입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대한광복단의 조직부터 활약, 그리고 그 의미까지 알기 쉽게 전시하고 있었는데요. 그 전에 먼저 12옥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까요?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제12옥사는 1922년 2층으로 지어진 옥사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가자 급증하자 신축되었던 건물입니다. 천정에는 수감자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복도를 밝게 하기 위한 채광창이 설치되었는데요. 서울구치소 운영 당시 훼손되었던 것을 2010년 보수 ․ 정비 시 원형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위쪽 오른쪽 사진에서는 수감자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설치된 채광창 아래의 일본순사 모형이 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특별전시를 찾아주셨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특별전시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

-강제병합 후 지속된 국내 비밀결사 운동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일제는 군인과 헌병경찰을 동원해 야만적인 무단통치를 자행했다. 국내항일운동은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비밀결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과 10명의 단원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은, 1915년 박상진 ․ 채기중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대한광복회로 합류하여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대한광복단의 발상지 풍기는 팔도 이주민의 출입이 잦아 국원회복에 뜻을 둔 애국지사들이 활동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채기중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풍기로 이주한 후, 의병출신과 지사들을 규합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으니 이것이 무장항일투쟁의 선구가 된 대한광복단이었다. 이들은 현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비밀화합을 통해 투쟁계획을 세우며 국권회복의 의지를 불태웠다.


광복을 외치는 것, 하늘과 사람의 도리

-항일세력 결집과 비밀결사 조직


대한광복회는 군대식 지휘계통을 세우고 전국에 지부를 두었다. 총사령으로 박상진을 추대하였고 그 아래 부사령, 지휘장, 본부사무의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지부는 지부장과 참모, 부원으로 구성하였으며 전국 8도에 설치했다. 지부조직은 1915년에서 1917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완비되었는데,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은 경상도 ․ 충청도와 황해도 ․ 평안도의 서북지방이었다. 이 조직에 참여한 인원은 1915년 이후 계속 증가하여 1917년 말에는 400여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밀결사였던 대한광복회가 군대식 조직체계를 갖추었던 것은 김좌진, 노백린, 윤치성, 신현대 등 대한제국시기 무관학교 출신들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정규 사관학교 교육을 받고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의 경험이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후 계몽운동, 비밀결사, 장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항일세력들이 결집해 조직의 역량도 한층 강화되었다.

 

현금수송마차를 습격하라

-다양한 독립자금 모집 활동 



군자금모집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광산에 몰래 들어가 현금을 빼앗거나, 일제에 수탈당한 세금을 도로 찾고, 친일부호들에게 포고문을 보내 의연금을 받아내는 방식이었다. 김대지를 비롯한 단원들은 충남 천안의 직산금광에 잠입하여 모금활동을 했고, 1916년 채기중은 대원 10여 명을 이끌고 강원도 영월의 중석광산에 침투하였다. 1915년 12월 권영만, 우재룡은 경주에서 세금수송마차를 습격하여 자금을 획득하였고, 이듬해 10월 이석대(이진룡)는 운산금광으로 가던 현금수송마차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일제의 한국병합 자체를 강제 불법행위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세금과 광산회사 이익금을 환수하는 것이 강도 일제에게 빼앗긴 재산을 되찾는 정당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친일파 심장을 겨누다

- 민족을 배반한 자, 친일파에 대한 경고


 


장승원은 경상도의 대표적인 친일지주이다. 의병 봉기 때 제공하기로 했던 자금을 내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소작인을 구타하여 살해하는 등 지역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동포들을 배반한 친일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민중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전파하고자 그를 단죄하기로 하였다. 1917년 11월 채기중, 유창순, 강순필은 장승원을 권총으로 저격한 후 격문을 붙여 독립정신을 만천하에 알리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네 큰 죄를 꾸짖고 경고하노라

-목숨을 건 친일파 단죄


 


박용하는 지역주민을 괴롭히는 등 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친일면장으로, 단원들이 보낸 통고문을 헌병대에 신고하여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1918년 1월 충청도 지부장 김한종은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단원 김경태와 임세규는 ‘사형선고문’을 작성하고, 1918년 1월 박용하의 집에서 그를 처단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항일무장투쟁의 불꽃이 되어

-죽음 앞에 당당했던 총사령관 박상진


 


1918년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사건을 충남경찰부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1918년 1월 27일 천안에서 장두환이 체포되고 단원들이 잇달아 검거되었다. 채기중, 박상진, 김한종, 임세규, 이관구, 김경대 등 지도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단원들도 체포되었다. 결국 박상진, 김한종은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채기중, 김경태, 임세규, 강순필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장두환은 마포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지도부와 단원들이 희생되면서 조직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활동은 침체되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때에 죽는 것은 도리어 사는 것이로다

(사당사사 死當死死 사환생 死還生)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채기중


 


국내조직이 무너지자 국외조직도 큰 타격을 받았다. 대한광복회의 역할은 완전히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대한광복회가 만주에 뿌린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으로 다시 살아났다. 김좌진은 길림광복회의 경험을 기반으로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지휘하며 일제에 맞서 싸워나갔다. 검거를 피한 우재룡 ․ 권영만 ․ 한훈 등도 광복단결사대와 주비단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 단체가 밑거름이 되어 의열단으로 이어졌다. 계몽세력과 의병세력이 만나 혁명전략을 통해 일제를 내쫓고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이들의 실천적 독립투쟁은 독립군 양성과 의협투쟁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겼다.


옥사 내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라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대한광복단의 창설과 활약, 그리고 그 의미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리라 생각해 봅니다.


 제12옥사 내 특별전시의 현수막으로 마무리하며, 이 특별전시는 10월 13일까지 진행되니 참고해 주세요. ^^


이번 9월 27일(금) ~ 9월 28일(토)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독립공원에서

열리는 '서대문독립민주페스티벌'! 

많이 기대해 주세요!


 

글, 사진 : 블로그 시민기자 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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