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역사저널 그날>,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등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사학과의 신병주 교수님께서 집필하신 "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영"인데요.
조선시대 왕을 다룬 책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왕'이 아닌 '왕비'를 주목한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왕비로 산다는 것은 왕비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43명의 조선시대 왕비가 등장합니다. 어린 나이(15세 미만인 경우도 많았지요)에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세자가 왕이 되면 왕비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때로는 친정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왕비들도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비로서의 책임을 다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왕비로서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때로는 고독하고, 또 때로는 무서웠을 여러 왕비드르이 삶을 읽으면서 그녀들이 겪었을 아픔과 시기와 질투 등 수 많은 감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화려한 삶을 살았던 왕비보다 쓸쓸하고 고독하게 알았던 왕비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가슴이 쓰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순왕후 송씨(단종의 왕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힘들도 외로운 인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정순왕후! 단종이 폐위되면서 서울 창신동 부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하며 고달프게 삶을 이어갔다하니 그 시간이 얼마나 길도도 서러웠을까요.
종로구 창신동에는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고 아직도 샘물의 흔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바로 정순왕후가 염색을 하고 빨래를 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왕비에서 일순간 평민으로 전락한 왕비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 서려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순왕후는 단종과 사별한 후에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64년을 더 살았으며 82세에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그 긴 시간동안의 가난과 외로움을 겪어내야 했을 한 여인의 삶이 슬프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하는 말이 있지요. 앎에 대한 말을 이보다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모르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데, 알고 보면 역사적 사실과 가치가 제대로 보인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습니다. 서대문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서오릉이나 서삼릉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잠든 왕과 왕비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 심씨는 세종과의 사이에서 8남 2녀를 낳았을만큼 금술이 좋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거의 대부분 후궁을 여럿 두었는데 소헌왕후는 후궁들을 투기하지 않고 세종이 총애하는 후궁에게는 특별히 더 관심을 갖고 대우를 해 주었다고 하네요.
왕비들의 삶을 따라가 보면서 인간으로서(혹은 한 여인으로서) '나 자신'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꽤 많이 했었습니다. "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을 읽으면서 왕비를 중심으로 한 역사의 흐름 또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볕이 좋은 날, 곳곳에 있는 조선시대 왕릉을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