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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토 우리 땅 '독도'이야기

서대문TONG 2011. 10. 24. 09:54

대한민국 영토 우리 땅,  <독도> 이야기



일본에서는 지금 반 한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바로 배우 김태희의 독도 사랑 캠페인 참여를 놓고 벌어진 일이랍니다. 대한민국 배우로서 당연한 일을 한 그녀에게 반일 배우라는 이름을 붙여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분노를 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까지 하네요. 두 번, 세 번 말하는 것이 입 아플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독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땅입니다. 오늘은 Tong과 함께 우리땅, 독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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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독도의 역사> 신라장군 이사부부터 독도의용수비대원 까지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권에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현재 기록상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의 우산국정벌부터입니다. 울릉도와 독도 및 주변해역을 무대로 해상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우산국이 신라에 정복된 후 신라의 문화가 우산국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죠. 현재 울릉도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적•유물들은 우산국이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문화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복 이후 한반도 본토 문화의 보다 활발한 유입을 보여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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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은 본토의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유입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울릉도•독도 등 해양도서민들과 본토민들의 활발한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랍니다. 이와 같이 울릉도와 독도 등 동해안 일대의 도서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해상세력 우산국이 신라에 정복된 후,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권에 편입되어, 우리의 고유영토로 존재해 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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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러 한국전쟁 중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때 일본은 다시 독도에 불법 상륙하기 시작했어요. 1953년에서 56년에 걸쳐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점령을 막아낸 것은 울릉도 출신 민간인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었답니다. 의용수비대원들은 1953년 4월 독도에 입도한 후, 1956년 12월 25일 경북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수비 임무와 장비 일체를 인계하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금과 무기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면서, 약 3년 8개월간 수차에 걸쳐 계속된 일본의 영토침범을 격퇴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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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애국심으로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독도를 사수했던 의용수비대의 활약이 없었다면,한국 전쟁 중에 독도는 다시 일본에 점령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1956년 12월 해산 당시 독도의용수비대의 노력을 볼 때 독도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우리 땅이 분명하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 스스로가 지켜나가야 할 땅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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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가치> 동해의 보석 독도


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에요.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 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하고 있죠.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히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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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며, 특히 1981년 서울대 식물학과 이인규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독도의 해조식생이 남해안이나 제주도와 다른 북반구의 아열대지역이나 지중해 식생형으로 볼 수 있기에, 별도의 독립생태계 지역으로 분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요. 그만큼 독도근해는 청정수역으로서 관광 및 해저개발, 지하자원 개발 등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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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독도는 군사, 전략적 가치로도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1905년 러일전쟁의 최후를 장식한 이른바 '동해의 대해전'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답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령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개명하며 시마네현 은기도의 소관으로 1905년 1월 28일에 일본내각회의 결정으로 독도를 강제적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하였고 1905년 8월 19일에는 독도에 망루를 준공하였기에, 막강한 러시아 해군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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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통신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돈으로는 셀 수 없는 경제적 가치와 우리 나라 국민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섬이에요. 그렇기에 저들의 망언에 분노할 뿐입니다.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우리땅, 독도. 우리가 함께 지켜나가야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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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광고> 전 세계에 독도와 동해를 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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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광고는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37) 성신여대 객원교수가 오는 한글날을 맞이해 5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유럽판 1면에 게재한 ‘독도한글’ 광고에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의 한글작품을 활용해 ‘독도’를 한글자씩 소개하며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누구나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설명해 자연스럽게 독도와 한국을 홍보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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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자에 캄보디아 현지신문인 엔 솜복 신문(N-SOMBOK NEWSPAPER)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광고가 개제됐어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독도 관련 광고를 의뢰한 사람이 캄보디아 인이라는 사실이죠. 이 광고가 개재된 당시 낯선 타국에서 독도와 관련한 광고를 접한 캄보디아 거주 한국인들은 도대체 누가 이런 광고를 냈는가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하네요. 캄보디아어인 크메르어로 발행되는 엔 솜복 신문은 캄보디아에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매체로 이번 독도 광고의 경우, 한 달간 계약 광고비가 미국 달러로 3,960달러(한화로 450여 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에요.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한 달 평균 월급이 70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큰 액수의 돈이죠. 한국을 매우 사랑하는 캄보디아인의 선행, 우리 국민들에겐 큰 감동을 주네요.







마지막으로 소개한 캄보디아 신문의 광고는 정말 뜻 깊은 소식이 아닐 수 없네요. 한국인도 아닌 캄보디아인이 우리 나라 독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독도 문제가 특정인들의 책임과 의무라 생각했던 우리에게 다시 한번 우리 땅 독도를 생각할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 독도를 지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라는 것, 우리의 관심이 독도를 지켜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기억하기로 해요^^ 다시 한번!! 독도는 우리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