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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블로그 공모전 수상작]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꼭 가봐야 할 곳

서대문TONG 2018. 2. 2. 10:12

 

사실 20살 때부터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하지만 어쩌다 보니 6년의 시간이 흘렀고.. 최근 다크투어리즘 컨텐츠를 제작하면서 그리고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며 독일인이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 9월 24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가는 방법은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바로 위치해있다.

생각보다 정말 넓고 컸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장료도 있다. 어른은 1인 3,000원.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첫 코스는 서대문형문소 역사 전시관이다.

코스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있어 순서대로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나라의 수치, 백성의 치욕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 하리오

아버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 죽은들 어떻게 눈을 감으랴

- 허위 의병장 유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수감자분들

정말 어린 분들고 많았다..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려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운동가들은 사진을 찍을 때 최대한 단정하게 양복을 입고 찍어 우리나라가 미개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고 했다는 말이 딱 생각나던 사진. 정말 멋있으신 분들이다.

지하 사형장을 구현해놓은 곳이 있었는데

처음엔 모르고 지나쳤던 밧줄을 보니 소음이 쫙 돋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밖에 정말 사형을 집행했던 사형장이 따로 있는데 그곳은 사진촬영이 불가하다.

거기야말고 정말 무서웠다...

고문의 흔적과 고통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자행한 고문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것들이었다.

 

고문은 독립운동가들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견디기 어려운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 모명감과 육체적 상처가 그들의 몸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고문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은 신체가 부러지고 찢기는 것은 다반사였고, 장기 파열, 허파에 물이 차는 흉막염, 뇌진탕 등의 병마에 시달여야 했다.

 

그러나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은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병마를 안은 채 수감생활을 견디어 냈다. 그 과정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 안에서 순국하거나 또는 죽음 직전 병보석으로 가석방되어 출소 직후에 순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행기를 태운다는 말은 두 손을 뒤로 수갑을 채워 묶고 여기에 밧줄을 이어 천장에 매어다는 것으로 보통 한두 시간씩 계속하곤 했다.

이렇게 하고 난 뒤 뒤로 묶여 굳어진 팔을 잘못 내리면 곧잘 부러지곤 했기 때문에 이때에는 두 팔을 전문으로 내려주는 잡역이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감방은 가장 넓은 것이 13㎡ 크기였다.

이같이 좁은 방에서 일제는 40~50명을 수용하여, 수감자들이 누워서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게 하였다.

한편, 감방 내부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없어 나무로 만든 통에 볼일을 해결하였고, 채광과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매우 비위생적이고 열악하였다.

옥들..

그리고 옥 앞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소개가 적혀있었다.

위에서도 감시가 가능했던 구조

이곳은 독방이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정말 좁고 어두컴컴했다.

나는 잠깐 들어가 있는데도 답답했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끔찍해..

밖에서는 이 작은 문으로 옥의 내부를 다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안에서는,

이렇게 밖에 안 보이는..

수감자들의 위급한 상황을 알렸던 패통 안에서 치면 내려오는 구조이다.

네가 실업자인 건 자유의 대가니까 혜택이야. 넌 야생마 같은 아이잖니?

Simple life, high thinking

생활은 간소히, 하지만 생각은 높게 가지는 것

자기 생활의 주인이 되어야지. 물질은 중요하지 않아.

설령 모자 500개, 넥타이 300개를 가진다고 해서 그 물질이 주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니? 오히려 물질이 주인이 되고 물질의 예속물이 되는 거야. 정신의 혁명이 필요해. 자기의식의 전환을 이루여야지.

수감자는 하루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14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렸다.

또한 옥사에서 공장으로 이동할 때는 옷을 모두 벗거나 나무 막대기를 뛰어넘어 몸에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했다.

감옥에 갇힌 것도 억울한데, 하루 종일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수감자들..

독립운동가 초상화들과 함께 걸려있던 태극기

격벽장

수감자들이 서로 대화를 못하게 운동을 시켰던 곳..

이것도 위에서는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바로 다 보이는 구조..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총격을 가했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신의 희생이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Your sacrifice is our present and future.

이곳은 여옥사의 거울방

임신했던 수감자..

만약 수감자가 임신을 했으면 밖에서 아기를 낳아, 옥에 돌아와 같이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옥살이를 하며 아기를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기에 같이 있던 수감자들이 음식을 더 나눠주거나 했다고..

다 돌고 보니 보이던 또 다른 태극기

 

독립운동가분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 태극기를 볼 수 없었겠지

 

감사합니다!

4시쯤 들어가서, 끝날 때까지 둘러보았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2시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갔는지 전혀 느끼지 못해, 마지막 코스였던 취사장을 못 가서 너무 아쉬웠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나와,

독립문을 보았다.

사실 독립문은 처음 본 거였는데, 유럽여행 갔을 때 독일에서 개선문을 꼭 봐야겠다며 가서 사진도 찍고,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서 구경도 했는데 우리나라 독립문은 이제야 보러 왔다니 내심 부끄러워졌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이제서라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가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안 가본 사람이 있다면 꼭 가보길 바란다.

그분들의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살 수 있는 거니까

 

<제5회 서대문구 블로그 콘텐츠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