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추천!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2015년 9월에 발간된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신선한 산문집이었어요. 무엇보다 일상에서 일어나고 겪는 일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며 때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산문집을 읽는 즐거움은 아, 맞아, 나도 그랬지... 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석원 작가가 생각하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무엇일까요?
이석원 작가는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그룹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글의 중간중간에 작가가 가수라는 것을 알수 있는 구절이 있기는 했지만, 어쩐지 글이 음악처럼 읽히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가 가수이며 작가여서 그런가봅니다.
산문집이면서 소설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의 내면 독백 같기도 한 이야기를 하루만에 읽었지요. 이석원 작가는 그만큼 책을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여자가 남자를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을 나누는 행위,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일들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너무 아쉬워 마. 모든 것에 여전히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가벼우면서도 어딘가 무거운, 그러면서 가슴 한 구석이 싸아하게 아파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경험했던 일들과 똑같은 부분을 읽으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아련한 향수에 젖기도 하지요.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퍼붓고 싶은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어.
단지 니가 좋기 때문이라는 말 외엔 다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는데.
책 속에 나오는 현대빌딩사옥이 있는 찻집인 '오후의 홍차'에 가면 우연히도 작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남동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했고, 성북동에 있는 '수연산방'에 가서 주인공인 김정희를 만나고도 싶습니다. 그 안에서 작가가 좋아하는 김동률과 이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요즘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생각, 연애에 대한 생각,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생각들이 비단실처럼 솔솔 풀어져내리며 글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으며 나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그립다, 안고 싶다, 같이 있고 싶다... 등등의 말을 떠올랐지요. 이석원 작가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가 사랑하는 그녀가 일주일마다 문자로 보내는 "뭐해요?"였습니다. 글의 끝 부분에 그 말이 나오지요.
"뭐해요?" 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바로 보고 싶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며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겠지요.
상처 있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 있게 마련이지요. 누구나 트라우마가 있는 것, 그래서 그 트라우마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면 또다시 상처 받게 되는 것... 그런 것이 삶이라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된다. 하여 순간은 작지만 빛나는 영원의 조각들. 그 아름다운 조각들을 너와 함께 새기려는 게 그리 큰 욕심일까."
요즘의 연애는 타인의 감정보다 나 자신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기도 하지요. 사랑하는 마음보다 이해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나 자신을 안다는 것, 상처를 보듬고 안아줘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책 속에 나오는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 인생은 단순해요. 우리 머릿속이 복잡할 뿐이지.
* 사랑과 이해는 어째서 한 몸이 아니던가.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일은 왜 그렇게 많았던가.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던 너를 이해하는 일만은 어째서 그토록 어려웠던가.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 사람은 학대를 받으면 바보가 되거든요.
* 로제 그르니에. 94세. 국내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노작가. 아지도 출판사에 매일 출근하고 항상 글을 쓰며 일이년에 한 권씩은 꼭 책을 내는 사람.
* 뭐해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물론 다시 들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했던 말을 어겨가며 연락을 할 여자가 아니고, 바로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기다리게 된 것이니까. 이 참으로 얄궂은 관계의 모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길 그토록 원했건만 정작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땐 들어줄 사람이 없는... 그게 바로 인생이고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나의 영원한 연애선생 나리는 오늘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