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아내로, 영조의 며느리로, 정조의 어머니로 살다 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고 본문

사도세자의 아내로, 영조의 며느리로, 정조의 어머니로 살다 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고

함께해요 서대문/기자단이 본 세상 2015. 11. 30. 08:42

사도세자의 아내로, 영조의 며느리로, 정조의 어머니로 살다 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고

 

 

역사의 진실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한중록'을 읽었다. <한중록>은 조선시대 영조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 이야기를 그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쓴 역사서다. 사도세자의 아내로, 영조의 며느리로, 정조의 어머니로 살다간 혜경궁 홍씨의 기록인데 알고 있었던 사실보다 훨씬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중록은  한 인간의 삶을 깊이있게 이해하게 하는 책이다. 홍씨가 세 차례에 걸쳐 쓴 회고록으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내 남편 사도세자>, 2부는 <나의 일생>, 3부는 <친정을 위한 변명>으로 나뉘어 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을까, 영조는 사도세자(경모궁)의 장점을 보려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일때마다 문책했고, 끝내는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다. 뒤주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대형 뒤주였다니 상상한 해도 끔찍하다. 뒤주에 갇힌지 8일째 되는 날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죽음을 잔인하게 지켜보는 영조의 가슴엔 무엇이 자리잡고 있었을까. 

뒤주 위에 풀을 올려놓아 햇볕을 차단하고 목이 말라 자신의 오줌을 부채에 받아 마시는 부분을 읽을 땐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다. 뒤주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놀림과 능욕을 당하며 몸부림치는 세자의 피눈물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쏟아낸 것이었으리.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을 소설가 이태준은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산문 고전'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문장이 뛰어나고 마음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한중록에는 뒤주에 갇혀서 생을 마친 남편을 뜨거운 가슴으로 애도하며, 때로는 그리워하는 혜경궁 홍씨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영조는 세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부자유친의 중요성이 새삼 놀랍게 부각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똑똑하고 영민했으나 마음이 심약하기도 한 세자의 성격은 걷잡을 수 없는 광폭함을 드러내기도 했으며.사람들을 많이 죽이기도 했다. 살인을 하는 세자의 광폭성은 처참하도록 슬프다.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의 남편은 고등학생인 아들과 자주 의견충돌을 일으킨다고 한다. 자신의 눈높이에 아들이 따라와주지 않는다고 때로는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하니 아내인 그로서는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때가 많다고 했다. 아들을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아들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해 주기만을 바라니 아들은 마음앓이가 심하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 첫번째 교육이 아닐까 한다.

책의 앞 부분에는 여러 시각적인 자료들이 제시되어 이해를 돕고 있다.

* 동궐도(창덕궁 및 창경궁 지도)

*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혼례 (좌)  서울로 돌아오는 혜경궁 (우)

책을 읽으며 혜경궁 홍씨의 삶에 불어닥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했던 파란의 일생을 생각했다.자신의 기억과 사료를 토대로 한중록을 썼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한편 책 중간중간에는 "한중록 깊이 읽기"가 포함되어 있다. <한중록>과 <조선왕조실록>의 차이, 사도세자의 여인과 자녀 등등 혜경궁 홍씨의 기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중록을 깊이 있게 읽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산문의 고전이라고 소개되는 한중록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바람이다. 특히 중년층의 독자들이 읽기를 권한다. <한중록 깊이 읽기>에 소개된 내용은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거라 생각되어 몇 부분을 옮겨본다.

*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당쟁의 와중에 노론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은 그리 적절한 설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당시 집권층이 노론이니 사도세자의 죽음에 노론의 역할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도세자가 친소론적 태도를 보이자 노론이 공격을 해서 죽였다는 견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제왕까지 당파를 갈라 보는 것은 자기 백성을 모두 이끌어야 하는 제왕의 지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마저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가 노론의 지지를 업고 등극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로 탕평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제왕은 자기 백성을 편 나누어 상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론의 독주가 강화되자 탕평으로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한 임금이 바로 영조이다.

 

* <현고기>를 보면, 박희천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사도세자가 사람을 많이 죽인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박희천과 한 마을에 칼 만드는 장인이 있었는데 그는 동궁에 불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잘린시체가 되어 나왔다. 동궁에서 나온 사람은 세자가 그가 만든 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머리를 잘랐다고 전했다고 한다. <한중록>을 보면 사도세자는 칼을 매우 좋아하여 평생 좌우에서 떼놓지 않았고, 심지어 상주 지팡이 모양의 칼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 <한중록>은 정사(政史)에는 차마 쓸 수 없는 것을 있는 대로 폭로한 기록이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이 총명하고 박식할 뿐 아니라 한번 보고 들은 것은 평생 잊지 않는 기억력이 있다고 했다. 한중록은 기록사료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혜경궁의 기억에도 크게 의지하고 있는데, 이런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몇 군데 미심쩍은 부분도 없지 않다. 예컨데 사도세자가 죽던 날 아버지 홍봉한이 궁중에 들어온 시간이라든지, 작은아버지 홍인한이 삼불필지(三不必知)를 말할 때 영조의 의중을 알고 있었냐는 부분 등은 그 자체가 정치적 쟁점인데 <영조실록>은 물론 당시 현장을 지켜본 사람의 기록인 <임오일기>등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로 논란이 되지 않을 부분 가운데 정조가 태어날 때 태몽을 꾼 날짜라든지, 영조가 김종수한테 비단을 준 경위 등등도 사도세자나 김종수의 문집과는 다소 다른 정보를 전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오류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한중록>은 놀랍도록 정확한 기록이며, 어떤 공식 기록보다 사건의 진상을 정화하게 포착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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