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국보훈의달] 의미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 소중한 역사를 지켜요 본문

[6월 호국보훈의달] 의미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 소중한 역사를 지켜요

함께해요 서대문/열린세상 이야기 2011. 6. 9. 09:37

    [6월은 호국보훈의 달] 의미를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 소중한 역사를 지켜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호국보훈(護國報勳)이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 이들의 공훈에 보답하는 것을 말하죠. 우리 민족은 유난히 아픔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6월은 다른 이념으로 인해 형제가 형제를 무참히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전쟁을 품은 달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TONG과 함께 우리 민족의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역사, 그날들을 돌아보려 해요. 나라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던 분들의 마음에 감사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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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국선열의 위훈을 기립니다


현충일 이야기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6월6일을 현충일로 지정,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답니다. 몇 일전에도 제 56회 현충일을 맞이 했었죠. 이날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는 날이랍니다. 가족 중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이 없다 하더라고 오전 10시에는 온 국민이 싸이렌 소리에 맞추어 묵념하는 시간을 갖죠. 또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현충일을 그냥 공휴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이번 56회 현충일은 주말과 이어지는 연휴로 생각해 그 어느 때 보다 긴 나들이 행렬이 도로를 메웠던 날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많은 분들 덕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전 세계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은 지금 우리 나라의 현실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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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회 2011년 6월6일 현충일 기념 행사


제56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3부 요인과 정당 대표, 전몰군경 유족, 재경 독립유공자 유족, 참전유공자 등 각계각층 인사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충일 추념식을 열었죠. 행사는 묵념과 헌화 분향, 영상물 상영, 다시 부르는 영웅 'Roll Call', 추념사, 현충의 노래 제창 등 순으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얼을 기렸답니다. 또 이날 추념식 직전에 한국전쟁 전사 60여년 만에 유해가 확인 된 고(故) 이천우 이등 중사의 안장식이 사병제 30번 묘역에서 진행됐는데요. 고 이 이등중사는 1960년에 안장된 형 고 이만우 하사 옆에 병장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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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 6.25


6.25 한국전쟁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상의 북한군의 대포가 남쪽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하고, 북한군 기동부대가 서쪽의 옹진반도로부터 동쪽으로 개성, 전곡, 포천, 춘천, 양양에 이르는 38선 전역에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유격대와 육전대가 동해안을 따라 강릉 남쪽 정동진과 임원진에 상륙했죠. 우리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어요.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시작되자 38선으로부터 불과 40㎞ 남쪽에 위치한 서울은 그야말로 아비귀환이 되었어요. 하루 아침에 전쟁난민이 된 남한 사람들은 가족을 잃고 삶의 모든 기반을 내려둔 채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 했답니다. 강대국의 이념 싸움에 전쟁터가 되어야 했던 우리나라는 결국 두 동강이 난 모습으로 60여 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아직도 남북의 분단 아픔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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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기념 행사


6.25 전쟁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을 상기시키고, 참전용사의 명예선양과 위국 헌신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6.25전쟁 기념 행사를 매년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치르고 있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전후 세대에게 호국 안보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자유민주체제를 지켜내기 위함이죠. 아픈 역사이기에 잊는 것보다 더욱 그날을 새기고 기억하며 다시는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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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일 시 : 6. 25 10:00
 ㅇ 장 소 :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ㅇ 참석인사 : 6.25참전유공자, 해외참전교포, 참전국용사, 모범장병, 전.의경, 의무소방원, 경비교도대원, 3부 요인 및 각계인사, 시민 등 4,000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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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 한 번의 쓰라린 기억 - 제 2 연평해전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폭음이 들렸습니다. 1999년 6월 15일 오전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남북한 함정 사이의 해전이었죠. '서해교전'으로 불리다가 2008년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된 제2 연평해전으로 인해 아까운 우리나라 청년 6명이 목숨을 잃었고 1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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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 북한측 해상에서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계속 남하하기 시작했어요. 이에 한국 해군의 고속정 4척이 즉각 대응에 나서 초계와 동시에 퇴거 경고 방송을 하는 한편, 교전 대비태세를 취하였죠. 그러나 아무런 징후도 없이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선제 기습포격을 가해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답니다. 이때부터 양측 함정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었고, 곧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교전에 합류하였어요. 이어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나머지 1척과 함께 퇴각하기 시작해, 10시 50분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함으로써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 교전으로 한국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하였어요. 또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하였는데, 북한 측 피해상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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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행위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하게 요구하였으나, 북한 쪽의 답변은 듣지 못하였다. 제2연평해전은 서해 NLL을 사수하기 위해 우리의 용감한 해군장병들이 북한의 기습도발을 온몸으로 막아낸 승리의 해전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연평 해전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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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우리나라에 참 아픈 달이자, 또 자랑스러운 달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목숨을 바친 분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이와 같은 아픔의 역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해 바래봅니다. 후손들 역시 이 분들의 희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한 안보의식과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지금까지 6월을 맞아 조금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 TONG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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