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구름같이 모인 우리 선조들은 일제 탄압의 부당함과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목놓아 “대한독립만세”을 외치셨습니다.
1919년의 그날, 대한민국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19년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1910년 한일 합방 조약을 통해 국가의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이에 일제는 대한민국에 대한 수탈을 가속화 했습니다.
거기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고종황제의 사망이
일제에 의한 독살이라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한편 국민을 계몽하던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합니다.
3.1운동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감옥 수형자 기록표 사진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으며, 운동이 일어난 날짜를 따라 3.1운동이라고 부릅니다.
한민족이 하나로 궐기했던 만큼, 그 규모는 엄청났습니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무려 106만명의 국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 인구가 1,600만~2,000만 사이였고, 이 중 노약자, 친일세력 등이 제외된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가 3.1운동에 참여한 셈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천안에서 만세를 외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시장과 일터, 가정, 학교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비폭력으로 독립을 외친 우리 국민들에게 일제는 총칼로 대응했습니다.
유명한 제암리 사건을 비롯,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무려 7,509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아마 계산되지 않은 희생자와 학살희생자를 감안하면 우리 국민이 흘린 피는 엄청납니다.
3.1운동의 여파
3월 1일 시작된 만세 운동은 그 해 5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를 토대로 국민들은 민족의식에 눈 떴으며, 근대 정부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수탈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일제는 문화통치라는 미명아래 은밀한 고문과 문화파괴 활동을 자행했으며,
조선인 말살 정책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우리 조상들은 결국 1945년 독립을 얻어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국경일에 관한 법”을 통해 3월 1일을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
이것이 3.1절이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 아픈 역사는 아직도 서대문 형무소를 비롯, 다양한 공간에서 우리를 잊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미래를 준비하며 다양한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