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그들이 있는 곳 '언더우드가 기념관' 본문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그들이 있는 곳 '언더우드가 기념관'

함께해요 서대문/기자단이 본 세상 2011. 3. 8. 18:53

언더우드가 기념관을 찾아서

연세대학교 삼성관(생활과학대학)에서도 가장 안쪽 숲으로 걸어가면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집 한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인데요, 연희전문학교와 제중원을 세웠던 언더우드 1세가 살던 연희동 자택을 그의 가족과 함께 기념한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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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과 노란 머리를 가진 한국인 - 원두우, 원한경 박사


언더우드 1세(원두우)는 1885년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해 첫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굴곡 많았던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언더우드는 자신의 신념과 교육, 의술로서 한국인을 도왔죠. 그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고, 한국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을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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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언더우드 2세(원한경)는 푸른눈과 노란 머리를 가졌으나 아버지와 같이 한국을 사랑한 한국인이었어요. 그는 일제시대와 해방의 격동시기를 한국에서 보냈고, 한국은 그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었습니다. 해방기 좌파사람들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것은 물론 한국전쟁 속에서 연희전문학교가 박살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을 사랑했다고해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을 사랑한 언더우드 가문

 

언더우드 1세는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찬송가를 간행했고,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서 한국어 문법과 한영사전을 편찬하면서 성경 번역 위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답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교육 사업에도 큰 공을 세웠는데, 한국에 온 다음 해인 188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아원을 세우고 고아학교를 창설했으며, YMCA, 대한기독교서회, 성서공회를 설립하고, 연희전문대학도 세웠죠.
그는 우리나라에서 무려 31년간 종교, 교육, 문예, 자선 등의 다방면에 걸친 봉사활동을 하다가 발진티부스에 걸려 병이 악화되자, 1916년 요양차 미국으로 떠났는데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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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그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무려 4대에 걸쳐 한국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게 된것이죠. 언더우드가는 특히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6.25를 거치는 이 민족의 역사적 수난의 소용돌이 속에 동참함으로써 한국의 질곡의 현대사 속 한국인 못지 않은 많은 피와 땀을 흘렸답니다.



언더우드가 기념관과 기념사업회


언더우드 가문이 100년 넘게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의술과 교육으로 한국을 섬겼던 '애국심'이 그 후손들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후손인 원일한 박사에 의해 고증되고 유물들이 기증되었고, 언더우드기념사업회는 언더우드 박사의 정신을 기리고자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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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념관은 작지만 그들의 손때 묻은 유물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서재에는 언더우드 1세가 지냈던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있을 정도죠. 한국으로 떠나올 때 가지고 온 트렁크 박스와 책상, 의자등을 보니 지금이라도 밖에서 일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푸른 눈의 한국인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방명록을 쓰고 나오면서,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을 진정 사랑했던 그의 정신이 후세에도 전해지길 바란다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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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기념관 홈페이지




글, 사진 블로그 시민기자 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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