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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명품길] 서대문안산 자락길의 일곱가지 이야기 세 번째 "자락길은 역사(歷史)의 길 입니다"

서대문TONG 2012. 11. 8. 11:12

[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명품길] 

서대문안산 자락길의 일곱가지 이야기 세 번째 

"자락길은 역사(歷史)의 길 입니다"

 

안산 (鞍山, Ansan, 295.9m)

 

안산은 무악이라고도 불리우며 기산ㆍ봉화뚝ㆍ봉우재ㆍ봉우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산은 동봉과 서봉의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산의 모양이 마치 말의 안장 즉 길마와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그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 하였습니다.


 


안산은 풍수지리상의 형세로 볼 때,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의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하여 안산을 어머니의 산이란 뜻으로 모악이라 하고, 이 산 남쪽의 고개를 똑고개, 남산 동쪽 고개를 벌아령이라하여 어머니가 떡을 가지고 나가려는 어린아이를 꾀이고, 또는 때리겠다고 얼러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라 합니다. 여기서 무악은 모악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조선 명종 때의 유명한 풍수지리가이자 예언가인 南師古는 안산(鞍山)의 글자를 풀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의 동쪽에 駱山이 있고, 서쪽에 鞍山이 있으니, 이것은 말과 그 말안장이 같이 있지 않고 서로 대치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조정의 신하(임금이 타는 말로 비유)들이 당파를 지어 동ㆍ서로 나뉘는데, 동쪽 낙산의 駱자는 名馬가 되므로 東人은 갈라지게 되고 서쪽 안산의 鞍자는 革安이 되므로 西人은 혁명을 일으킨 후에라야 안전하게 되리라."

 

과연 그의 글자 풀이대로 뒤에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다시 나뉘어졌으며, 서인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낸 후에야 정권을 잡고 비로소 안정되었습니다. 태조(太祖) 2년 경기도 관찰사 하윤(河崙)의 주장으로 한양 천도지로 예정된 곳이 바로 안산을 주산(主山)으로 하는 모악(母岳) : 현재의 신촌과 연희동 일대))입니다. 그러나 주산이 낮고 지역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구내에 있는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하는 곳이 천도지역으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조선 성종때 명나라 사신이 무악재를 넘어온 뒤 "하늘이 천길의 한 관문을 지어서 한 군사가 일천의 군사를 당할 만 하다."고 칭송하였던 천연의 요새 지형이기도 합니다.

 

또한 안산의 길은 의주와 통하는 중요 교통로였습니다.

조선시대 도시사회연구(손정목)에 따르면 서대문(돈의문)밖은 돈의문에서 경기감영에 이르는 지역으로 서부의

반송방에 해당됩니다. 서부의 도성 외의 2개 방인 반송방과 반석방은 현재의 의주로 가는 길의 서편에서 아현동, 북아현동까지를 포함하여 무악재 고개에 이르는 범위로 그 당시 개성과 한양간의 통로에 연하여 일찍부터 인가가 조밀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안산의 길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시작되는 독립과 민주의 길이기도 합니다. 안산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서대문 형무소,,일제 시대에 많은 애국지사들이 고문을 받고 수감되었던 곳입니다. 

엉엉안산에서 이 곳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엄숙해집니다. 서울에서 평양,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안산과 인왕산 사이의 고갯길인 무악재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가 구한말 한일합병 직전에 이곳에 설치한 근대적인 감옥으로, 독립문이 있던 이곳에 형무소를 설치하여 일제강점기동안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한 곳입니다.ㅜ.ㅜ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으로 약 500여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이죠.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불리게 되고,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 2,890명이 수용되었습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김구선생, 강우규, 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이곳에서 목숨을 다햐였습니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정변과 같은 정치적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습니다. 일제시대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 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매우 뜻깊은 곳입니다. 이러한 서대문형무소로부터 시작되는 안산의 길은 독립과 민주의 길입니다.

 

 


다양한 역사와 함께한 서대문구의 대표적인 산, 안산! 

서대문안산 자락길은 역사의 길 입니다.

 

현재는 시민들의 훌륭한 쉼터이자 힐링의 공간, 웰빙의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장애인, 노약자 등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조성한 명품 숲길입니다.

    


 

 

깊은 역사를 간직한 안산!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듬직한 곳!

앞으로도 쭉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소중한 안산입니다. 편리하게 자주 이용하시고, 사랑 듬뿍 해주세요♡


서대문안산의 자락길은 독립과 민주 그리고 평화를 잇는

역사의 길이며 대한민국 내일의 길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