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 아침의 피아노
여름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뜨거운 햇볕 아래 녹음이 짙푸릅니다. 열정으로 가득한 7월에 철학자 김진영 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 기록한 일기인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습니다.
2017년 암 선고를 받고 그 해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투병하면서 쓴 234편의 단상 혹은 일기라고 해도 좋은 글들은 암 선고 이후의 몸과 정신을 훑고 지나가는 생각에 대한 가감 없는 기록입니다.
글을 한 편 씩 읽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 죽음을 앞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죽음을 인정하기까지의 여러 단계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56세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의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지인과 나누던 이야기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60대 중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인의 친척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을 받아들였고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하게 사랑의 마음으로 지내셨다고 해요.
그리고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아내에게 “행복하게 살다간다, 고마웠다.”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었던 날,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철학자가 남긴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 된 <아침의 피아노>에 실린 234편의 글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합니다. 슬프면서도 기쁨이 순간순간 느껴지는 글들은 마치 잔잔하고 맑은 피아노 소리처럼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지요.
와병 중에도 감사한 사람들 생각하기, 더 많이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 자신을 사랑했던 지인과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에서는 울컥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이들에게 힘을 받고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마음은 우리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지요. 햇살 따뜻한 날 바람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걸을 때 고통 없이 걸을 수 있는 건강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슴 시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他者)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작가는 말 합니다. ‘내가 때로 이 빛나는 세상을 껴안고 울고 싶다’고... 그 마음은 어떤 말과 글로도 설명할 수가 없겠지요.
글에서 몇 번 언급한, 저자가 번역한 롤랑 바르트의 저서 <애도일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며, 57번째 단상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봅니다. 우리 앞의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 합니다.
<57>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미루었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써 이 불가능한 삶과의 투쟁이 무슨 소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