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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서대문블로그시민기자단 2020. 1. 30. 16:45

어니스트 헤밍웨이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만년설로 뒤덮인 킬리만자로의 정경을 그려보면서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인 『킬리만자로의 눈』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다른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30대 후반이었던 1936년에 발표한 소설이니 출간된 지 84년이 되었지요. 젊은 나이에 쓴 ‘삶, 사랑,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정독했습니다.



 첫 구절이 주는 강력한 이미지는 가슴이 서늘할 정도입니다. 


“킬리만자로는 높이가 19,710피트 되는 눈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라 한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불린다.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는 얼어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첫 구절을 읽으며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대청봉(1,708미터) 보다 세 배 이상 높은 곳, 만년설로 덮인 산 정상에 얼어 죽은 표범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겪은 경험과 모험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지요. 거의 모든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표현의 미적 감수성이 뛰어난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다는 헤밍웨이의 목소리를 듣는 듯 했지요. 우리는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상실한 고독한 인간의 내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 해리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지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삶이라는 한자성어가 생각납니다. 


(다음의 내용에는 책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인 해리가 새로운 삶을 이루고자 아내(헬렌)와 함께 찾아간 아프리카에서 우연한 사고로 괴저병(급성패혈증 질병)에 걸린 후, 온 몸에 퍼진 병균이 오른쪽 다리를 마비시키며 썩어가면서 서서히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해리는 젊은 날 쾌락과 안일함에 몸을 맡기고 작가로서 쓰고 싶었던 글을 쓰지 못하고 지낸 시간을 후회합니다. 

 

다리가 썩어가면서 죽어가고 있지만 그를 가장 큰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와 이제 다시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기회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삶과 재능을 낭비해온 것에 대한 지독한 허무, 더는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다는 회한과 깊은 고독 속에서 드디어 그는 자신의 죽음에 개의치 않기로 하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눈앞에 구원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해리를 죽음으로 안내하는 경비행기의 출현은 구원자로서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킬리만자로 정상을 지날 때 해리는 그곳이 바로 자신이 갈 곳 임을 알게 되는 부분에서는 많이 숙연해 졌습니다. 영화 빠삐용에서 이야기 하지요. ‘인생을 낭비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각자의 앞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겠지요. 


겨울이 가기 전에 함박눈이 한 번 쯤 펄펄 날렸으면 좋겠습니다. 얼어붙은 표범은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을 올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