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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거장, 금아 피천득 시인과의 추억을 그리며

서대문TONG 2011. 3. 11. 17:32

금아 피천득 선생님을 그리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중의 하나가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집 '인연'이 아닐까 합니다. 중고등학교 고과서에 실린 '수필은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자연적이다...'를 기억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테지요. 또한 선생님이 사랑하는 딸 서영이와 서영이가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인형인 '난영'이 이야기도 따뜻한 미소로 떠올릴 것입니다.



내가 우리 딸에게 사다 준 인형이 있읍니다. 돌을 바라다보는 아기만한 인형입니다. 눈이 파랗고 머리는 금빛입니다. ... 그리고 언제나 웃는 낯입니다. 인형은 누이면 눈을 감고 일으키면 자다가도 금방 눈을 뜹니다. 배를 누르면 웁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프게 해서 울리는 때는 별로 없었읍니다.
... 난영(蘭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읍니다. 동생이 없는 우리 서영이가 난영이를 처음 안을 때의 광경을 영리한 엄마들은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서영이는 국민학교를, 중고등학교를, 그리고 대학을, 그리고 시집갈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읍니다. 난영이를 두고 떠났읍니다. ... 서영이를 떠나 보내고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나는 난영이를 보살펴 주게 되었읍니다. 날마다 낯을 씻겨 주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목욕을 시키고 머리에 빗질도 하여 줍니다. 여름이면 엷은 옷, 겨울이면 털옷을 갈아입혀 줍니다. 데리고 놀지는 아니하지만 음악은 들려 줍니다. 여름이면 일찍 재웁니다. 어쩌다 내가 늦게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난영이를 재우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읍니다. 난영이는 앉은 채 뜬눈을 하고 있읍니다. 이런 때는 참 미안합니다.


<瑞英이와 蘭英이 中>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인연 中>


요즘 저는 '인연'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마 열 번도 넘게 읽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글이 주는 향기에 마음까지 향기로워짐을 느낍니다.


 



 


피천득 선생님과의 만남



저는 특히 선생님께서 작고하시기 2년 전에 선생님의 자택에서 만나 뵈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2004년 12월. 반포에 사시는 선생님 댁에서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던 일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릅니다. 어린 소년처럼 맑은 미소로 맞아 주시던 선생님은 지금 이 세상에 아니 계시지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주옥같은 시와 수필은 오래오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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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님 (출처 : 천지일보 2010년 5월 31일 기사)

 


피천득 선생님께서는 시를 쓰는 저에게 '시는 문학의 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맑고 아름다운 시를 써야 하며 특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쓰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직접 사인하신 '소네트 시집' 과 '수필집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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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님께서 주신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와 친필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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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님께서 주신 <소네트 시집>과 친필 사인




피천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평생을 맑게 살다 가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많은 위로를 받고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삶에 순응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색시가 김장 서른 번을 담그면 할머니가 된다는 이야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수필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입니다. 세상에 '어머니' 만큼 소중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며 정신적 버팀목이신 어머니의 음성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사셨을까요.



 

 

엄마는 나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나는 왕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쓰고 다니던 내가 왕자 같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엄마 中>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멀지 않겠지요.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한 편 한 편의 글을 깊게 음미하며 읽고 있습니다.



 

 금아(琴兒) 선생님을 추억하며

 

                                                     유지희  


2004년 12월 10일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

 

초겨울 따사로운 햇살아래

반포길은 낙엽이 덮고 있엇다

 

해맑은 소년의 미소로 반겨 주시며

서재에서 한 시간 정도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 주셨지

문학의 꽃은 시며

무엇보다 맑고 진실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던

선생님의 음성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의 시

'구원의 여인상'을 읽어 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집에서 만든 식혜와

리본으로 묶은 주홍빛 감을

선물로 드렸더니

이런 선물은 처음이라시며

함빡 웃으시던 모습이

감나무를 볼 때마다

어제 일인 듯 떠오른다

 

선생님께서 사인해 주신

번역시집인

'내가 사랑하는 시' 가

책꽂이에서 언제나 웃고 있다

사람은 가도 마음은 남는 것

 

창 밖에 낙엽이 지고 있다.


*금아(琴兒) : 피천득 선생님의 호

 



 


글 사진 : 블로그 시민기자 유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