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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는 책, 신영복의 사색노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서대문블로그시민기자단 2016. 2. 26. 08:32

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는 책, 신영복의 사색노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얼마전에 세상을 떠나신 신영복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촛불로 남아 계실거라는 생각을 한다. 뉴스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안타까웠다. 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깨우침을 주신 아름다운 지성인이었기 때문이다.

1968년 육군사관학교 정경대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하셨던 신영복 선생님은 1988년 8얼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셨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잉여의 몸이 되어 20년을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지내셨지만 선생님은 결코 갇힌 정신으로 살지 않으셨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처음처럼> 등의 저서는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특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들은 옥중에서 하루에 2장씩 지급되었던 휴지에 깨알같은 글씨로 써 내려간 신 선생님의 사색노트이며 세상을 향한 절절한 외침이다. 230여 장의 편지와 글들을 담아 삽화와 함께 실은 이 책은 아버지, 어머니, 형님, 형수님, 동생, 계수씨, 조카들에게 틈틈이 쓴 편지 그 이상의 이야기이다.

깊은 사색과 그리움의 편지, 부모 형제와 함께하지 못하는 회한의 나날 속에서도 푸른 의지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지성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이 대숲에 불어오는 바람같기만 하다. 

 감옥안에서 느끼는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손바닥만한 창을 통하여서도 깊게 느끼고, 따스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셨다.

감옥살이의 애환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한 마음에 때로는 가슴이 쓰렸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의 물리적인 이별이 주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고 깊은 사고를 품고 사셨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셨으리라.   

사색노트 중에서 감동적인 것은 바로 '청구회 추억'이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에세이며 푸름이 가득한 기상이 느껴졌으며 선생님의 젊은 날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청구회 추억은 1966년 봄(숙명여대 강사를 지내시던 시절)에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대를 받고 회원 20여명과 함께 서오릉으로 한나절 소풍을 가던 길에 불광동에서 어린 소년들과의 만났던 추억을 쓴 글이다. 

1966년이니 50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려하니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난다.  그 시절의 기억이 내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기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상들이 있다.

그때는 서오릉을 가려면 불광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가야했다고 한다. 대학생들과 서오릉을 가는 길에 여섯 명의 어린이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역시 서오릉으로 소풍을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보자기에 점심거리를 싸서 놀이를 가는 넉넉지 않은 아이들과 우연히 만난 후 한달에 한 번씩 만날 약속을 하고 2년여 동안 그 약속을 지키신 선생님! 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얼마나 큰 산이었을까.

모임 이름을 꼬마들의 학교 이름을 따라 청구회(靑丘會)라 지어주셨다. 아이들과 만나며 책을 읽게 했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사는 삶의 지혜를 무언으로 가르쳐주셨다. 생활이 넉넉지 않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갖게 하셨다. 엽서도 보내주시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며 참으로 값진 만남을 이어가시던 중 감옥에 들어가게 되신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고 있을 때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명령 앞에서 말없이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던 선생님의 심경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왔다.

편지글은 또 다른 감동의 연속이다.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 형제간의 끈끈한 우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핵가족화된 우리들의 지금 삶이 잃어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 시절에는 풍요로웠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물질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사랑일 것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에서 봄을 느낀다. 자연의 섭리는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어보기를 권하며 마음에 와 닿은 신영복 선생님의 편지글 몇 편을 소개한다.

나는 내가 지금부터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당해낼 힘이 나의 내부에, 나와 함께 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풍부하게, 충분하게 묻혀 있다고 믿는다.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지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약 물(物)에서 오는 것이라면 작은 기쁨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믿어도 좋다. 수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1969. 11. 12.)

 

:: 아버님께 쓴 편지 중에서

오늘은 눈도 하얗게 쌓여 세모의 정경을 앞당겨놓았습니다. 옥중에서 해를 더하기도 이미 십수번이 더 되는데도 새삼스레 마음이 예사롭지 못한 까닭은 연마하신 부모님을, 그도 병상에 두었기 때문인가 합니다. 어머님 환후가 좋아지셨다는 형님 말씀 곧이 듣고 마음놓습니다. (1983. 12. 18.)

 

:: 어머님께 쓴 편지 중에서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어머님께도 기다림이 집념이 되어 어머님의 정신과 건강을 강하게 지탱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께서 걱정하시던 겨울도 가고 창 밖에는 갇힌 사람들에게는 잔인하리만큼 화사한 봄볕이 땅 속의 풀싹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1983. 3. 16.)

 

:: 형수님께 쓴 편지 중에서

갇혀있는 새가 설말라 야위듯이 두루미 속의 술이 삭아서 식초가 되듯이 교도소의 벽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날카롭게 벼리어놓습니다. 징역을 오래 산 사람치고 감정이 날카롭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1983. 3. 15.)

 

:: 계수님께 쓴 편지 중에서

물컵보다 조금 작은 비닐화분에 떠온 팬지꽃 한 포기를 얻어 작업장 창턱에 올려놓았습니다.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꽃 한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 (1980. 5. 19.)

책을 덮으며 다가오는 성큼 다가오는 봄을 느낀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주어진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쳐 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