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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 향기로 남은 당신,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 '당신'을 읽고

함께해요 서대문/기자단이 본 세상 2015. 12. 22. 08:50

청매 향기로 남은 당신,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 <당신>을 읽고

 

박범신 소설가가 일흔의 나이에 마흔 두 번째 장편소설 <당신>을 발표하였다.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있을 수 있는 허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에서 나의 길을 더듬어 보기도 하며 때로는 나와 같은 주인공이 되어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꽃잎 보다 붉던 당신'은 어떤 당신일까?  소쿠리에 "사랑해요 당신!" 이라는 묘비명을 쓰는 사람은 누구일까? 책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삼십년 전쯤의 젊은 날로 돌아가 있었다.

윤희옥이 젊은 날 사랑했던 김가인, 그리고 늙어서야 짧은 시간을 사랑했던 주호백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자화상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희옥, 호백, 철성, 용구와의 얽힌 실타래를 꿈 속 에서는 풀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린 배우자를 간병하면서 스스로 작아지고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본다. 

현대문명이 발달할수록, 핵가족으로 살아갈수록 우리가 무방비 상태에서 '치매'라는 병에 걸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십 대의 젊은 날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이 꿈 꾸던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암울했던 60년대의 사회현실과 지금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 사랑의 의미도 퇴색되지 않았다고 믿는데 꽃잎보다 붉었던 당신의 사랑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는가. 

사랑없는 사람과 살면서 사랑했던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다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의 아픔이 흐르는 강물처럼 흐느끼는 듯 하다. 젊은 날 사랑에 목말라 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희옥의 딸 인혜의 친아버지인 김가인, 그는 희옥에게 사랑이었고 아픔이었다. 인혜가 엄마와 함께 실종되었다는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의 상처를 더듬게 된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가물거리는 기억속을 더듬으며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게 된다. 딸과 함께 고향을 찾아가며 옛 기억을 하나씩 꺼내며 회상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있다.

소설 속에 서대문구의 홍제동과 불광동이란 동명이 나올 때면 마치  젊은 날의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홍제동이 소설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주호백이 좋아했던 청매는 여전히 피었다 지고 또 피었다 지리라. 매화나무 그늘에 앉아 희옥은 꽃 같았던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으리.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면서 무서움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가보다.

"당신"이라는 말, 그 말이 주는 깊고도 따스한 울림. 이 책에서 당신은 '함께 견뎌온 삶의 물집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눈물겨운 낱말이다. 그늘과 양지, 한숨과 정염, 미움과 감미가 더께로 얹혀 곰삭으면 그렇다, 그것이 당신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소설 속의 낙일암으로 길을 떠나고 싶다. 훠이훠이 무거운 것 내려 놓고 말없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소설 속의 노래 한 구절은 한 편의 시와도 같다. 

"아이야 나랑 걷자 멀리/ 너의 얘길 듣고 싶구나/ 아이야 서두를 건 없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아// 별이 닿는 흙을 밟으며/ 바람 따라 걷고 싶어요/ 누굴 만난다면 노랠 들려주면/ 나를 기억하겠죠// 돌아올 땐 더 가벼울 발걸음/ 가슴엔 할 얘기 한 가득"

그리움이 울컥 치밀어오를 때 몇 번이고 읽어보고 싶은 구절을 옮겨 본다.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게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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