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도서 / 권장도서]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 본 글은 <수레바퀴 아래서>의 줄거리(결말 포함)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으실 때 참고해 주세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지요. 헤르만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비롯하여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페터 카멘치트>, <게르트루트> 등 많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가 29세에 출간한 책으로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헤세가 소년시절이었던 1891~1892년에 마을브론에 있는 수도원학교에 입학하였고 7개월 후에 도망을 쳤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수레바퀴 아래서’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줄거리를 소개해 드릴게요.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스 기벤라트’는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총명하여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습니다. 한스 기벤라트는 목사님과 학교 선생들의 기대 속에 어렵고 힘든 신학교 시험에 당당히 2등으로 합격하여 신학교에 입학하고 장래가 보장된 목사수업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게 되지요. 명석한 두뇌와 성실한 태도로 신학교 교장선생의 신임을 받지만 한스는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방황하게 됩니다.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려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지요.
고향에서 낚시와 수영,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한스이지만, 신학교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는 존중받지 못했고 창의성조차 인정받을 수 없었지요. 교육 제도 하에서 남다른 영혼의 소유자인 한스는 몹시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인 문예애호가 ‘헤르만 하일너’와 친해졌지만 그와 우정을 나누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고, 하일너는 교장선생에게 대들다가 퇴학처분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한스는 더욱 고통스런 학교생활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신경쇠약증에 걸리게 됩니다. 명석한 두뇌였지만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게 되고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아버지가 그토록 염원하던 수도자의 길은 멀어지게 됩니다. 한스는 신경쇠약증이 심해저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그는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스가 꿈꾸는 삶은 아련한 추억 속의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맘껏 행복했던 그런 삶이었지요.
나약하고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이면서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는 한스가 사랑했던 친구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후 과즙을 짜는 일터에서 플라이크 아저씨의 조카딸인 엠마와 이성적인 사랑에 눈을 뜨지만 엠마는 한스의 가슴에 돌을 던지고 말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지칠 대로 지친 영혼을 보듬으려 무던히도 애쓰던 한스는 기계공으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노동의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 학교 친구였던 기계공인 ‘아우구스트’ 그리고 몇 명의 동료와 함께 이웃 마을로 놀러간 한스는 술에 잔뜩 취하여 늦은 시간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데 다음 날 아침 강물에 빠져 죽은 시체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죽음은 자살인지 사고인지 알 길이 없지요. 한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한스의 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적, 한스의 곁을 떠나는데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부재가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제도의 압박 속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한스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테지요. 누군가에게 가장 따스한 안식과 평온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마 어머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한스는 더욱 외로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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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문학에서 표현되는 자연풍경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무와 새, 흐르는 강물, 빛나는 태양, 크고 작은 동물, 마을 풍경 등의 묘사를 읽으면 마치 나 자신이 그 안에서 온갖 자연의 소리와 향기에 젖어드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보고 느끼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감수성이 예민한 한스가 자연과 멀어졌을 때 찾아오는 마음 속 공허함과 건조함은 어느 곳에서도 채워지지 않을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아닌 대리경험이지요. 공부라는 거대한 틀에 갇혀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멀리하면서, 아니 멀리할 수밖에 없어서 끝없는 학업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과 한스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삶에 대하여 보다 폭 넓게 사고하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눈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필요한 이 시대는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대화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으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새겨 두고 싶었던 몇 구절을 소개해 드립니다.
* 마음에 새겨 두고 싶은 구절들
“물론 지나치면 안 되지. 무리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 일주일에 한두 번쯤 산책을 하도록 하려무나. 산책이란 꼭 필요할뿐더러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거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지. 신선한 공기를 쐬며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손쉽고 즐거운 일인지,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어쨌든 고개를 높이 치켜들거라!”
“하일너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고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고민으로 괴로워하며, 자기를 둘러 싼 주위 환경을 경멸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는 낡은 기둥과 담장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영혼을 시구에 반영하고, 환상에서 자기만의 허구적인 삶을 만들어내는 기이한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슬픔을 낯설고 귀한, 값진 보물처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 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지금 그는 가을의 들판을 돌아다니며 계절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저물어가는 가을, 고요히 떨어지는 낙엽, 갈색으로 물든 초원, 새벽의 짙은 안개, 그리고 너무 익은 나머지 이제는 지쳐버린 식물들의 말라버린 모습, 이런 것들이 한스를 여느 병자처럼 절망에 싸인 무거운 기분으로 몰아갔다. 그는 이것들과 함께 소멸하고, 잠들고, 또한 죽음에 이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젊음이 이러한 바람에 반기를 들고, 은근히 생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그가 어떻게 물에 빠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길을 잃고, 가파른 언덕에서 발을 헛디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다가 몸의 중심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평화와 안식이 가득한 밤, 그리고 창백한 달빛이 그를 향해 비추었기 때문에 피곤함과 두려움에 지친 나머지 어찌할 수 없이 죽음의 그림자에 휘말려들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