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양심.
지난 가을 무렵인 것 같다.
남편이 울산에 근무하고 있어서 잠깐씩 다녀오곤 할 때였다.
은행잎이 곱게 문든 가을 날 태화강을 끼고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잠시 정류장에 멈추었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KTX역까지 가자면 버스밖에 없기 때문인지 정류장마다 승객들은 계속 올라왔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한 할머니가 손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 기사양반, 내가 어제 차비가 없어 그냥 탔는데 가서 얘기하이소 "
만 원짜리 한 장을 요금함에 넣자 기사님은 잔돈지급버튼을 눌렀다.
거스름돈을 챙긴 할머니는 얼른 내려가셨다.
" 고맙습니데이 "
할머니를 내려준 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나가는데 내 머릿속에는 예쁜 그림 하나가 그려지고 있었다.
' 어제 할머니가 버스를 탔는데 지갑이 없었나 보다.
당황해 하시는 할머니께 기사님은 나중에 달라며 그냥 태워주신 것 같다.
고마운 할머니는 오늘 차비를 들고 내린 정류장에 오셔서
그 버스를 발견하고 외상 차비를 갚으신 모양이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믿고 태워준 기사님의 마음도 약속을 지킨 할머니의 마음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양심만 믿고 태원준 기사님. 그 기사님이 누군지 확인도 않고 약속을 지킨 할머니.
비록 그 버스가 할머니를 태운 버스가 아닌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몇 푼 안 되는 지하철요금을 내지 않으려고
개찰구를 훌쩍 뛰어넘는 젊은이의 날쌘 동작.
나는 그런사람들의 비뚠 양심이 떠올라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도 남은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다시 찾아온 가을, 그날의 할머니 모습이 선명하세 피어오른다.
박명자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