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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독립][독립민주축제] 독립민주축제의 주무대,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대문독립공원을 가다!

서대문TONG 2014. 8. 6. 16:40

[광복절][독립][독립민주축제]

독립민주축제의 주무대,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대문독립공원을 가다!

 

 

 

 

오는 8월 15~16일은 서대문구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2014독립민주축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렸듯,

 

독립민주축제는 

축제 속에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되새기고

더 밝은 한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이번 독립민주축제가 열리는 메인무대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대문독립공원입니다!

 

나란히 위치하여 서대문구 통일로 251 (구주소 : 현저동 101)을 공통 주소로 사용하고 있는

역사관과 공원은,

지난 100년 동안 우리민족의 아픔과 설움, 극복의 과정을 그대로 지켜보았죠ㅠㅠ

 

오늘 Tong에서는

독립민주축제의 메인무대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대문독립공원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본제국주의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고 1907년에는 군대를 해산시켰어요

이에 전국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병 활동이 일어났지요

 

잔인한 일제는 의병활동을 한 사람들과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1908년 서대문 밖 인왕산 기슭에 약 5만원을 들여 480평 규모의 감방과 80평 정도의 부속시설물을 가진

 

"경성감옥"을 지었습니다

 

경성감옥의 수용 인원은 500여명 정도로 전국 8개 감옥에 비해 엄청난 크기였다고 하네요.

경성감옥의 수용 인원이 늘어나자 마포 공덕동에 다른 감옥을 지었고

 

1912년 9월 3일에는 이름을 "서대문 감옥"으로 바꾸었습니다

1923년에는 다시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고문과 처형을 당했던 슬픔의 장소입니다ㅠㅠ

 

광복 후엔

1945년에는 서울형무소로,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꾸어

수감시설로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수 많은 민주투사 분들이 옥고를 치르셨지요ㅠㅠ

 

1987년 경기도 의왕시 이전과 함께 의무를 다한 서울 구치소는,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서 국민들에게 아픔의 역사 현장을 생생히 전하고 있네요

 

 

 

 

 

 

 

역사관 내 과거 사형장부근에는 스산하게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심어진 나무인데요,

수종은 미루나무로 9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자신들의 원통함을 토해내어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이번 독립민주축제에서도 애국지사들의 뜻을 기리는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니 

계속 Tong을 주목해주세요!
 

 

 

 

 

서울구치소가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감에 따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조성되었죠!

 

감옥 7동, 사형장, 지하여자감옥 등을 복원하고,

탑골공원에서 3·1운동기념탑을 이전하였으며,영은문 주초와 연계하여,

 1992년 8월 15일 독립공원이 탄생했습니다!

 

독립협회에서 건립(1895년)한 독립문(사적 제32호)이 있으며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을 영접하던 독립관(당시는 모화관이라 하였음)을 복원(1996년)하였고,

독립관 내부에 순국선열위패 2,327위를 봉안하였습니다! 

 

독립문 바로 앞에는 영은문주초(사적 제33호)가 자리하고 있구요!

그 외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서재필박사 동상 등이 있습니다~

 

또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자!

바로 이웃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따로 또 같이" 운영되고 있네요.

 

 

 

 

 

 

 

서대문형무소에서는 수 많은 독립/민주 투사들이 고난을 겪으시고,

또 일부는 형장의 이슬로 고결한 생명을 바치셨는데요.

 

일제가 독립운동을 이유로 수감한 투사들은 무려 3,000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그 이름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부 애국 지사를 소개하려고 해요.

 

1. 유관순

 

 

이화학당 재학 중 학생 시위 결사대를 조직하여 3.1운동을 이끈 리더 중 한 분이셨죠

시위 중 부친과 모친을 모두 잃었지만 굴하지 않고 대한 독립을 외쳤으며,

끝내 18세 나이로 고문받다 옥중 순국하셨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으셨습니다.

 

2. 강우규

 

 

어려서 한의학을 배워 재산을 모았던 강 의사는 이후 만주로 망명,

대한국민노인동맹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던 도중,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암살을 시도했습니다.

남대문역 의거 실패 후, 순사에 의해 체포된 강 의사는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66세의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으셨습니다.

 

3. 의병장 허위

 

<출처-왕산기념사업회>

 

이름 높은 학자집안에서 성장한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분연히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연합의병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하였으나, 곳곳에서 의병활동을 통해 항일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1908년 은신처 발각으로 체포된 선생은 그해 9월 사형장에서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으셨습니다.

 

4. 의병장 이인영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분노한 선생은 이후 전국에서 의병활동을 벌였습니다.

연합의병 서울진공작전의 총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갑작스런 부친의 별세로 낙향했습니다.

의병 재기를 노리던 도중, 선생의 성묘를 눈치챈 일제에 의해 체포,

1909년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셨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으셨습니다.

 

5. 의병장 이강녕(이강년)

 

 

 

양반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했던 선생은 평민이 아님에도

과감히 동학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특히 의병활동에 전술을 도입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고, 광무황제(=고종)의 밀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교전 중 피탄으로 체포된 선생은 1908년 사형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으셨습니다.

 

이 밖에도 너무나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 안창호 선생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아픔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지요.

 

■ 오시는 길  

 

 

⊙  지하철  -  독립문역 3호선 5번출구 (독립공원 방향)

⊙   버  스  -  현저동 또는 독립문정류장에서 하차

          간선(파랑)버스 : 471, 701, 702, 703, 704, 720, 752
          지선(초록)버스 : 7019, 7021, 7023, 7025, 7712, 7737
          광역(빨강)버스 : 9701, 9703, 9705, 9709, 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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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민주는 알면 알수록 우리 선조들의 희생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Tong지기는 얼마전 "명량"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요,

영화 속 대사 중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거 후손들이 알까? 아따.. 고걸 모르면 호로자식이제...'

선조들의 희생,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기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희생의 의미와 미래에 대한 재발견이 함께하는 시간!

서대문구 독립민주축제로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