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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정 2

역사속으로 - 서지, 천연정, 독립관 등이 있는 마을 (천연동)

서지, 천연정, 독립관 등이 있는 마을 - 천연동 지난 번 충정로동에 이어 이번에는 천연동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천연동, 냉천동, 영천동 및 옥천동이 합하여 현재는 천연동사무소 관할에 있었는데, 그중 천연동은 금화산 기슭에서 금화초등학교를 안고 있는 동네로 동명 유래를 보면 천연동 31번지에 무악재를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환영 및 송별 행사장으로 사용하였던 천연동아라는 정자(亭子)가 조선 영조 17년(1741)에 세워져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천연동아라고 불렸으며 이곳을 조선말에는 경기중군영으로 쓰였으며 또한 최초의 외국사관인 일본 공사관으로 사용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이 곳은 이판동과 석교동의 각각 일부라고 하였는데 이판동은 이 지역에 이판서가 살았다 하여 유래..

천연동 천연정(반송정) 이야기

천연동 동명여자고등학교에 있는 자리에 조선 영조때 세운 「천연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나무 가지가 우산같이 옆으로 퍼져있는 소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하여 '반송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반송정」이라고도 하였다. 반송정은 무악재가 오가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데 빼놓지 않았던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하였으나그 후 태종 7년(1407년)에 모화관이 건립되면서 연회자의 장소가 이곳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 17년, 일본 초대공사 화방의질(花房義質)이 이곳을 일본공사관으로 사용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일본을 배척하는 군인과 백성들의 습격으로 정자가 불타버리고 일본인은 인천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갔다. 또한 모화관은 원래 넓은 공지로 군사의 훈련 및 무사들의 시험장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