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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서대문/서대문 역사이야기 45

서대문의 역사 - 연희동 104고지(연희고지) 이야기

서대문에는 높이 88m, 86m, 104m의 능선인 104고지, 일명 연희고지가 있습니다. 휴전선 부근의 전방에나 있을 법한 산이름이 서울 한복판에 지여 붙여진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연희고지는 바로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간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탈환을 위한 첫번째 진지로서 공산군이 주변 지형을 이용하여 오랫동안 견고하게 구축, 각종 무기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수비하고 있던 이 고지를 한국해병 제1,2대대가 3일간 (1950.9.21~9.23) 악전고투 끝에 탈환하여 공산군의 서부 방어선을 돌파하여 서울탈환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아군 178명을 잃고 공산군 1,750명이 사살된 격전지로써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958년 9월 28일에 연희동 99에 높이 1.5m..

서대문의 역사 - 서대문과 이괄의 난

서대문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 이괄의 난 이괄은 인조반정때 광해군을 페하고 인조를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큰 공은 세운 인물이었지만 왕위에 오른 인조는 이괄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일등공신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즈음 중국에서는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원조하기 위하여 막대한 군비를 들였기 때문에 나라가 점차 쇠퇴하고 정변이 일어나 청나라가 만주땅을 근거지로 하여 세력을 점차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북쪽 국경지대의 방비가 급하게 되었으므로 인조는 이괄을 국경 방비를 담당토록 하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이전의 대우에 대해 불만을 품어왔던 이괄은 중대한 임무를 맡게되자 섭섭한 정을 풀고 평안도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은 이괄은 부원수에 임명되었고 자기보다도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

서대문의 역사 - 무악재호랑이를 아시나요?

주로 경기도 고양군에 사는 나무장수들이 넘어 다녔던 무악재는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만 해도 혼자 넘어다니지 못했던 무서운 고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개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이 물려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던 호랑이가 있었다는게 믿어지시나요?!) 어쨌든 호랑이 때문에 옛 서대문형무소가 자리잡고 있던 곳에 유인막이라는 막사가 있어 행인을 일단 그곳에 모았다가 열 명에 이르면 넘어가게 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면 군인들에게 장교는 승진하고, 하사관은 면포 20필을 받고, 천인에게는 부역 면제를 받는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고 하니 그 당시 얼마나 호랑이의 피해가 많았는지 짐작 할 수 있겠죠^^?! 그러던 어느날 조정에서는 이곳의 호랑이의 피해가 심하자 호랑이를 없..

서대문의 역사 - 서대문 지명의 유래

서대문 지역은 석기시대로부터 거슬러오라가보면 씨족끼리 취락을 이루어 집단생활 및 농경과 수렵·어업활동을 하며 생활하던 곳으로 신촌에서 당시 유물로 흑요석 및 옥수석기 등이 발견되기도 했답니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기원전 18년에 백제의 땅이었으나,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점령하였다가 553년에 다시 신라에게 빼앗겼던 땅이기도 합니다. (원래 삼국시대에는 세나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위해 치열했던 시대인지라~~~) 서대문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쓰게 되었는데요, 조선시대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그 주변으로 도성이 쌓아짐에 따라 4개문 가운데 하나인 돈의문, 즉 서대문이 건립됨으로써 성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서대문이라는 지역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다들 많이 알고 있는 ..

모진 세월의 고난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역을 지나다보면 붉은색 벽면에 약간 더 높이 솟아오른 망루가 보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져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고난과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바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정문. TV에서 가끔 보셨죠? ^^ 비 오는 날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세운 곳 일본제국이 본격적 침략을 감행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건축한 것이 서대문형무소입니다. 원래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는데요. 일본인이 설계한 이 감옥은 560여평의 목조건물로 약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당시 전국의 감옥 총면적이 약 1,000제곱미..